18일 진행된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 이틀째 행사에서는 대의원 공개투표인 ‘롤 콜(roll call·호명)’이 진행됐다. 알파벳 순서대로 미국의 50개주 및 6개 자치령, 워싱턴의 대의원 확보 수를 불러나간 뒤 과반을 확보한 후보를 대선 후보로 공식 지명하는 것. 롤 콜을 시작한 지 약 34분 만에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공식 선출됐다.
이로써 바이든 후보는 1973년 델라웨어주 연방 상원의원으로 워싱턴 정치무대에 진출한 지 47년 만에 대선 본선티켓을 공식적으로 쥐게 됐다. 대선 도전 삼수 끝에 이뤄낸 결과다. 부인 질 여사와 함께 화면에 등장한 바이든 후보는 만면에 웃음을 띤 채 “진심으로 매우, 매우 감사하다. 목요일(20일)에 뵙겠다”고 말했다. 바이든 후보는 20일에 후보 수락 연설을 한다. 민주당은 동맹관계 복원 및 외교적 공조를 통한 북한 비핵화 등의 내용이 담긴 정강도 채택했다.
○ 바이든의 인간적 면모 부각한 질 여사
질 여사는 이날 행사의 마지막 연사로 등장해 남편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질 여사의 연설 장소는 미국 델라웨어주 브랜디와인 고등학교의 텅 빈 교실. 1990년대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던 곳이다. 그는 “새로운 공책의 종이나 왁스칠이 된 복도의 냄새는 여기 없다. 학생들은 네모난 컴퓨터 스크린에 갇혔고 교실은 어둡기만 하다”고 묘사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학교 문을 닫게 된 현실을 언급한 것이다.
질 여사는 바이든 후보가 6선의 상원의원 및 부통령을 지내던 시기에도 교사라는 현직을 유지해왔던 커리어 우먼.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부모와 학생들, 경기 침체와 건강 악화로 고통받는 미국인들을 향해 “엄마이자 할머니로서 비통함을 느낀다”며 위로하는 감성적인 접근과 함께 바이든 후보가 이 위기를 극복할 적임자임을 강조했다.
그는 이날 바이든 후보가 아픈 과거사를 극복해낸 과정을 소개하며 이를 국정으로 연결시켰다. “붕괴된 그의 가정을 어떻게 다시 회복시킬 수 있을지 고민했었다”며 “같은 방식으로 나라를 회복시킬 수 있다. 사랑과 용기와 흔들림 없는 확신, 이해와 친절로 그렇게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후보는 첫 상원의원에 당선된 지 한 달 만인 1972년 12월 교통사고로 부인과 어린 딸을 잃었고, 2015년에는 장남 보 바이든을 뇌종양으로 잃었다.
질 여사는 “보의 장례식 후 나흘이 지났을 때 조는 면도를 하고 정장을 꺼내 입은 뒤 일을 하기 위해 아들이 없는 세상으로 걸어 나갔다”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상상조차 안 되는 순간들이 있었지만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조에게 이 나라를 맡기면 그는 우리 가족에게 했듯이 바로 당신의 가족에게도 똑같이 할 것”이라며 “그는 우리를 하나로 묶고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 빌 클린턴 “백악관이 폭풍의 중심”
질 여사에 앞서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존 케리 전 국무장관,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 공화당 소속이지만 바이든 후보 지지를 선언한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이 주요 연사로 나섰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이 시기에 ‘지휘 센터’가 되어야 할 백악관 오벌오피스는 혼란만 가득한 ‘폭풍 센터’가 돼버렸다”며 “지금의 백악관은 절대로 책임이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the buck never stops there)”고 비판했다. 해리 트루먼 전 대통령이 집무실 책상에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The buck stops here)”고 적어놨던 문구를 인용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무책임한 정책결정을 꼬집은 것이다.
파월 전 장관은 “바이든은 (임기) 첫날부터 미국의 리더십과 도덕적 권위를 복원할 것”이라며 “그는 독재자나 폭군의 아첨이 아니라 우리 외교관과 정보 공동체를 신뢰할 것”이라고 말했다. 샐리 예이츠 전 검찰총장 대행은 “트럼프 대통령은 법의 지배를 짓밟고 정적을 공격하기 위해 사법부를 무기화했다”고 비난했다. 예이츠 전 대행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시한 이민 조치 이행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경질됐다.
워싱턴=이정은특파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