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벨기에 궁정화가였던 페테르 파울 루벤스는 종교화나 인물화도 잘 그렸지만 특히 신화의 세계를 표현하는 데 탁월했다. 고전 문학과 예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어떤 복잡한 주제도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도록 그려내 찬사를 받았다.
루벤스가 말년에 그린 이 그림도 비너스와 아도니스의 신화를 다루고 있다. 고대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가 쓴 ‘변신 이야기’의 내용을 토대로 티치아노의 그림을 참조해 그렸다. 큐피드의 화살을 맞은 비너스는 잘생긴 사냥꾼 아도니스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다. 얼마나 좋아했던지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하기 위해 관심도 없던 사냥을 취미로 삼았다. 어느 날 함께 갈 수 없는 일이 생기자 비너스는 아도니스에게 위험을 경고하며 절대 사냥을 가지 말라고 한다.
루벤스는 바로 이 장면을 거대한 화폭에 담았다. 붉은 옷을 입은 아도니스는 창을 들고 사냥을 떠나려 하고, 누드의 비너스는 두 손으로 그의 팔을 붙잡으며 애원하고 있다. 어린 큐피드까지 나서 아도니스의 한쪽 다리를 붙잡고 말리고 있다.
루벤스는 미의 여신 비너스를 지나치게 희고 살찐 여자로, 미소년 아도니스를 구릿빛 피부를 가진 거대한 근육질의 남자로 묘사했다. 지금의 눈으로 보면 과해 보이지만 실제보다 비대하고 강렬한 이미지가 바로 루벤스가 원하던 이상적인 인체의 모습이었다. 화려한 색감과 자유분방한 필치, 볼륨감 넘치는 인체 묘사와 연극적 장면 구성 등 그림은 루벤스 미술의 특징을 모두 보여준다.
아도니스는 여자 말을 들었을까? 그럴 리가. 남자다움을 과시하며 기어이 사냥을 떠났다가 멧돼지에게 죽임을 당했다. 사랑하는 연인도, 어린 큐피드도 말렸건만 무모한 자신감 때문에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무모함과 용기는 다르다. 모두가 위험을 경고할 때는 따라야 화를 면할 수 있는 법. 17세기 그림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