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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찾는 ‘실버 고용’의 미래

Posted September. 07, 2020 08:06   

Updated September. 07, 2020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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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3월 31일 종업원들이 70세까지 일할 수 있도록 규정한 ‘고령자고용안정법’ 개정안이 일본 국회를 통과했다. 내년 4월부터 일본에서 기업에 고용된 직원들은 70세까지 정년을 보장받게 된 것이다.

 일본 기업들은 고령 인력을 활용하기 위한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사실 일본 기업의 평균 연령은 그동안 계속 높아져 왔다. 도쿄 상공리서치 조사 기준에 따르면 상장기업 1841개사(3월 결산 기준)의 종업원 평균 연령은 2010년 39.5세에서 2019년에는 41.4세로 계속 높아졌다. 2024년에는 일본에서 50세 이상의 인구가 사상 최초로 절반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고령자를 활용할 수밖에 없는 일본 기업으로서는 이를 위한 새로운 경영 시스템을 선행적으로 구축하지 못할 경우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최근 한국 기업들도 직원 고령화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고령화를 일찍 겪고 있는 일본 기업에서 일부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일본 기업들은 호봉제나 정기승급제도 등을 없애고 필요한 스킬을 가진 근로자를 발 빠르게 수시로 채용해 업무 내용이나 실적에 따라 보수를 결정하는 시스템을 모색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개혁을 ‘멤버십(membership) 고용’에서 ‘잡(job)형 고용’으로의 혁신이라고 부른다. 기존 멤버십 고용 방식은 업무의 내용이 종합적이고 로테이션 근무도 많고 전문성에 관한 규정도 애매했다. 또 평가가 어려워 근무시간, 연공으로 임금을 지불하는 관행이 강하다.

 반면 잡형 고용은 미국과 유럽처럼 업무의 범위를 한정적, 전문적으로 정하고 직무에 따라서 임금을 지불한다. 다른 기업으로의 재취업이 용이하고 고용의 유연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다. 같은 업무를 한다면 실질임금 수준은 동결되기 때문에 일본 기업으로서는 오랜 경험과 기술을 축적한 고령자를 지속적으로 고용해도 부담이 줄어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잡형’ 고용제도로의 개혁을 추진하는 일본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화장품 기업 시세이도는 올해 1월부터 관리직을 대상으로 직무정의서상에 직원의 직무를 명시하고 달성 수준에 따라 성과를 평가하는 잡형 고용제도를 도입했다. 또 8000명의 평사원에 대해서도 2021년 1월부터 이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다만 잡형 고용제도가 확산되려면 특정 분야에 전문화된 인력이 필요에 따라 여러 기업을 옮겨 다닐 수 있는 등 고용시장 및 근무 여건이 유연하고 성숙해질 필요가 있다.

 음료 기업인 산토리는 2013년, 65세 정년제를 도입한 데 이어 올 4월 65세 이상 근로자의 연장근로제도를 도입하는 등 고령자 활용 제도를 정착시키는 데 성공한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기업은 일찍 근로자의 육성, 평가, 직무자격 제도를 체계적으로 도입해 인재 육성에 주력해 왔다. 고령자를 포함한 인력을 ‘고용해야 할 부담’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창출하는 인재로 육성해 고령자도 실력에 맞는 직무와 보수를 받게 하는 것이다.

 산토리 인사제도의 기반이 되는 것은 ‘직능자격제도’와 ‘자격·역할제도’다. 직능자격제도는 직무 수행 능력에 따라 직능 자격을 직원에게 적용하는 것이며, 비즈니스 전문가를 지향해 경험을 축적하는 것이다. 일반 직원들에게 전문성을 길러 연공서열이나 나이가 아닌 자신의 실력으로 평가받고 고용을 유지할 수 있는 문화를 정착시키는 기반이 된다.

 이를 위해 연간 네 차례에 걸쳐 상사와 부하가 미팅을 가지면서 성과와 함께 연초 목표 대비의 미비점, 부족한 부분의 능력 개발 포인트 등을 논의한다. 간부들에게는 난도가 높은 도전 과제를 스스로 설정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사실 일부 일본 기업은 고령자의 연장고용제도를 도입하면서 일괄적으로 임금 수준을 삭감해 근로자의 동기 부여를 약화시키기도 한다. 이 때문에 사무실만 지키는 고령 근로자로 전락하는 사례도 많다. 산토리의 노력은 일반적인 고령근무자제도의 이런 폐해를 극복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는 점에서 여러 시사점을 제공한다.


이 지 평 LG경제연구원 상임자문위원 jplee@lger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