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9일 로버트 오브라이언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취임 후 첫 전화 통화를 갖고 조만간 대면 회동을 추진하기로 했다. 최종건 외교부 1차관도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과 만나기 위해 이날 미국으로 출국하면서 ‘한미 NSC(국가안보실) 라인’과 외교부-국무부 라인이 재가동됐다. 특히 미국이 대중견제망 구축 차원에서 한국의 동참을 추진하고 있는 ‘쿼드 플러스(Quad plus)’에 대해 최 차관은 “우리 생각을 얘기하겠다”고 말해 정부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벌여온 ‘줄타기 외교’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청와대는 이날 서 실장과 오브라이언 보좌관의 통화에서 “양측은 공동의 가치를 공유하는 한미 동맹에 대한 상호 간 확고한 의지를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공동의 가치’는 인도태평양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로 한국을 포함한 이른바 ‘쿼드 플러스’ 구축을 추진하고 있는 미국이 강조하고 있는 표현이다. 쿼드 플러스는 미국, 일본, 인도, 호주로 구성된 ‘쿼드’에 한국, 베트남, 뉴질랜드를 포함해 확대하자는 구상이다. 비건 부장관은 지난달 31일 ‘미국-인도 전략동반자 포럼’ 화상회의에서 쿼드 플러스에 대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우리가 공유하는 이익과 가치를 반영하는 새로운 기구를 만드는 건 그 어떤 (미국) 대통령에게도 커다란 성과가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서 실장과 오브라이언 보좌관은 또 북한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향후 수개월이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 프로세스 진전을 위해 중요한 시기임에 공감하고 이와 관련해 다양한 추진 방안을 계속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미 외교·안보 수장의 통화는 7월 서 실장이 임명된 지 두 달여 만에 이뤄졌다. 서 실장은 취임 직후 기타무라 시게루(北村滋) 일본 국가안보국장과 첫 통화를 가진 뒤 지난달 말 양제츠 중국 중앙정치국 위원과 부산에서 회담을 가진 바 있다. 통상적인 관례와 달리 미국,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미국 카운터파트와 상견례를 가진 셈. 청와대는 오브라이언 보좌관이 7월 말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재택근무를 했기 때문이라고 밝혔지만 일각에선 미중 갈등 등 산적한 외교적 난제가 반영된 결과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한 외교 소식통은 “서 실장과 오브라이언 보좌관과의 통화가 이전부터 추진됐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한 차례 미뤄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조만간 문재인 정부 2기 외교안보 라인의 미중 관계와 미국 대선 이후 비핵화 대화 재개 구상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서 실장과 오브라이언 보좌관의 통화에선 지난달 양제츠 위원과 만난 내용에 대한 설명도 있었을 것”이라며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와 한미 경제협력대화 등이 예정된 가운데 굳건한 한미 동맹을 보여주는 움직임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출국한 최 차관은 이번 방미에서 쿼드 플러스와 비핵화 대화 재개 구상, 한미 방위비 협상 등 한미 현안에 대해서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최 차관도 이날 출국 전 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쿼드 플러스에 대해 “(미국의 입장을) 좀 차분히 들어볼 건 들어보고, 우리 생각을 얘기할 건 얘기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지난 3년간 양국 정부가 진행해 왔던 한미 현안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점검도 하고 향후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서로 현상을 공유하게 될 것”이라며 “(방위비 협상은) 맞춰볼 건 맞춰보고 따져볼 건 따져볼 것”이라고 했다.
한기재기자 record@donga.com · 워싱턴=이정은특파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