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학교에 다닐 때 흔히 말하는 문제아였다. 가출도 잦고 무단결석도 잦았다. 불안한 가정환경 탓이었다. 그러다 보니 성적이 바닥이었다. 기말 시험에서는 화학 문제를 하나도 풀 수 없었다. 화학식이라고 아는 것은 H₂O밖에 없었으니 당연했다. 그래도 그냥 앉아 있기가 무료해 답안지 뒷면에 좋아하는 식물들에 대해 쓰고 답안지를 제출했다. 그럼에도 화학 선생님은 뒷면의 낙서에 동그라미 두 개를 그리고 45점이라는 점수를 줬다. 어떻게든 학생을 보듬어주고 싶어서였다.
퇴학당할 때 교무회의에서 그를 두둔한 것도 그 선생님이었다. “성서는 백 마리의 양 중 한 마리를 잃었다면 아흔아홉 마리를 남겨두고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선생님은 어린 학생을 품어주자고 했다. 학생이 얼마나 힘들면 그러겠는가. 학칙을 어겼다고 쫓아내면 그게 무슨 교육인가. 더욱이 이 학교는 기독교 정신을 받드는 미션스쿨이다. 그러나 학교는 끝내 그를 내쳤다. 그것이 그에게는 한이 되고 멍이 되었다.
학교는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위해 한 마리를 내쳤지만 선생님은 포기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쫓겨나 연극의 길로 들어선 제자가 공연을 할 때나 제자의 희곡이 공연될 때마다 극장을 찾았다. 폐암 수술을 받고 입원과 퇴원을 반복할 때도 공연을 보러 와서 제자를 축복했다. 격려 엽서도 잊지 않았다. “미리의 목소리로, 미리의 노래를 평생 쉬지 않고 부르도록 하세요. 그 노래에 공감하는 사람, 그 노래로 용기를 얻은 사람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그는 선생님의 사랑과 응원을 받으며 유명 작가가 되었다.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고, 영어로 번역된 소설 ‘우에노역 공원 출구’로 2020년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올라 있는 재일교포 유미리 작가가 그 학생이었다. 그는 세월이 흘러 고인이 된 키다 선생님을 추모하는 모임에서, 길을 잃고 정처 없이 헤매던 외로운 양을 유일하게 품어주던 은사를 그리워하며 속울음을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