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5년 건주여진을 통일한 누르하치가 사신을 보내 조선에 통교를 요청했다. 조선은 전대미문의 국란을 치르는 중이었다. 이런 때에 북쪽에서 여진족마저 침공해 온다면 조선은 2개의 전쟁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당황한 조선은 일단 사신을 파견해서 누르하치의 형세를 알아보기로 했다. 이런 임무를 수행하려면 모험심과 수완도 있고, 통찰력 있는 인물이 필요했다.
정부는 인재를 물색하다가 서울 남부 주부로 있던 신충일을 발탁했다. 12월에 신충일은 당시 누르하치의 본성이었던 비아랍성을 방문했고, 그때의 견문을 기록해서 건주기정도기라는 기행문을 남겼다. 건주기정도기는 오늘날 누르하치 연구에 소중한 사료가 되어 있다.
신충일은 비아랍성에서 여진족 인사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어느 여진 관원이 이런 질문을 했다. “여기 있는 우리들도 다 비단옷을 입는데, 당신 나라에는 비단옷 입은 사람이 왜 드뭅니까.” 듣기에 따라서는 매우 기분 나쁜 질문이다. 그러나 화를 내고 외면하기보다 되물어야 한다. 그가 왜 그런 질문을 했을까? 15세기만 해도 건주여진은 조선보다 훨씬 열등한 문화와 경제력을 지녔다. 수렵, 목축으로 생활하는 부족도 있었다. 철기와 농기구 제작 기술도 부족해서 조선에서의 주요 수입품이 농기구였다.
그러던 이들이 16세기부터 조직적으로 경제를 재건했다. 농장을 효과적으로 경영하고 국가가 무역을 주도하면서 국부를 증진시켰다. 철기 생산 기술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이런 국력을 바탕으로 군사력도 크게 성장했고, 약탈경제 역시 함께 성장했다. 과거에 우리가 앞서 있었다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중요한 건 현재의 능력과 발전 가능성이다. 과거에 집착하는 사고는 오히려 현실 감각을 마비시키고, 발전 능력을 더 왜곡한다. 그 결과가 병자호란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우리 역사에 대한 극단적인 비하나 증오, 또는 과도한 찬양이 공존한다. 왜 갑자기 냉정과 이성을 잃어 가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찬양이든 비하든 이성을 잃은 역사의식만큼 사회의 집단지성에 해로운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