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해상에서 요격 미사일을 발사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격추하는 시험에 성공했다. 지상에서 요격 미사일을 쏘아 올리는 기존 방식이 아닌 함정에서 발사한 미사일로 ICBM을 격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달 북한이 신형 ICBM을 공개했고, 핵심 기술인 대기권 재진입 기술까지 확보했을 가능성이 높아지자 미국이 해상 요격시험으로 응수한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미사일방어청(MDA)은 17일(현지 시간) 해군 함정 존 핀(DDG-113)에서 쏘아 올린 요격 미사일로 모의 ICBM을 격추하는 시험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 함정은 이지스 탄도미사일 방어(BMD) 시스템 장비가 장착된 구축함인 미 해군전함으로, 최신형 요격 미사일 ‘SM-3 블록 2A’를 장착하고 있다.
MDA에 따르면 미 동부 시간으로 이날 0시 50분 남태평양 마셜제도에 있는 콰절레인 환초의 로널드 레이건 탄도미사일 방어시험장에서 모의 ICBM이 하와이 북동쪽 해역을 향해 발사됐다. 존 핀 구축함은 ICBM의 궤적을 분석한 뒤 ‘SM-3 블록 2A’를 발사해 우주 공간에서 격추시켰다. 존 힐 미사일방어청장은 “이지스 BMD 프로그램의 놀라운 성취이자 중요한 이정표”라며 “(이번 시험은) 예상치 못한 미사일 위협에 대항하는 대비책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미 정보당국은 북한이 ICBM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확보해 미국 본토까지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은 이날 ‘2021년 미국 국방력 지수’ 보고서에서 “미 중앙정보국(CIA)은 북한의 ICBM 재진입 발사체가 미국 본토를 목표로 하는 정상 궤도로 발사될 경우 적절하게 작동할 것으로 평가했다”고 전했다.
ICBM의 재진입 기술은 핵 소형화와 함께 북한이 대미 핵타격력을 구비하기 위한 ‘최종 관문’에 해당된다. ICBM 발사 후 핵탄두를 실은 재진입체(RV)가 대기권을 벗어났다가 다시 들어와 음속의 20배 속도로 하강하면서 섭씨 8000도 안팎의 마찰열과 엄청난 충격을 견디고 목표지점에 투하돼야 ICBM의 실전 운용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워싱턴=이정은특파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