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묘호란 당시 의주성을 지키던 장수는 이순신 장군의 조카 이완이었다. 이순신 장군을 따라 임진왜란에 종군한 덕에 실전경험도 풍부했고, 이순신 장군의 통솔법을 배워 엄하면서도 용기 있고, 책임감이 투철한 리더였다.
조정에서도 이런 능력을 높이 평가해 의주성을 지킬 장수는 이완이 아니면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침공 첫날, 후금군의 특공대가 의주성 수문으로 침투해 성문을 열었다. 의주성은 허무하게 함락됐고, 이완은 시가전을 벌이다가 전사했다. 그를 동정한 사람도 있지만, 이완은 경계 실패의 책임과 함께 큰 비난을 받았다.
병자호란 최악의 패전으로 알려진 쌍령전투에서도 정찰과 경계를 하지 않아 적이 오는 것을 몰랐다고 한다. 고려시대 몽골군이 침공했을 때, 황해도 정방산성 근처 동선령에서 몽골군이 접근하는 줄 모르고 쉬던 고려군이 기습공격을 받아 대패한 적도 있다.
크게 패배한 전투마다 경계나 정찰병을 세우지 않아 기습을 당했다는 기록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임진왜란 중에 이런 보고가 자주 올라오자 선조가 한탄했다. 조선군 지휘관들이 어리석어서 경계병조차 세우지 않았던 것일까? 그런 경우가 없었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현장에 없던 사람들이 결과만을 보고 비판하는 말은 정확한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경계병을 세울 줄 몰랐던 것이 아니라 효과적인 경계 방법을 몰랐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훈련과 운영시스템 부재가 진정한 원인이었을 것이다. 고 백선엽 장군도 6·25전쟁 당시 이런 문제점을 지적한 적이 있다.
이런 경우라면 지휘관을 처벌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최근 휴전선에서 경계 실패 사례가 여러 번 발생하고 있다. 사람이 하는 일이 완벽할 수는 없지만, 불비한 원인은 냉철하게 점검하고 개선해야 한다.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없다’라는 말이 있다. 전시(戰時)라면 용서할 기회조차 얻지 못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