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가 이탈리아 반도 통일을 추구하던 시기, 국내 전쟁이던 도시 정복전이 국제전으로 발전했다. 카르타고, 그리스-마케도니아 세력이 이탈리아 도시와 지중해에서 충돌한다. 로마가 뭔가 특별히 잘못해서가 아니다. 세상은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내가 물을 마시기 위해 옹달샘에 도달했을 때, 다른 사람은 농업용수를 조달하려고 샘을 찾고 있을 수도 있다.
당시 떠오른 격전지가 그리스 이민자와 원주민, 카르타고 식민지배로 나뉘어 있던 시칠리아였다. 로마도 당연히 개입했다. 지상전에서 로마군은 카르타고 보병을 여지없이 격파한다. 하지만 카르타고의 주력은 해군이었다. 저명한 역사가 테오도어 몸젠은 이런 말을 했다. “카르타고군을 전장에서 패퇴시키기는 쉽지만, 최종 승리를 거두기는 어렵다.”
실제로 로마군은 지상전에서 승승장구했지만 바다가 봉쇄되자 위기에 처했다. 국가 운명의 갈림길에서 로마는 모두가 믿지 못할 일을 벌인다. 겁 없이 대규모 함대를 창설한 것이다. 간신히 배는 만들었지만 해전의 승리를 좌우하는 항행 능력과 숙련도는 크게 못 미쳤다. 로마는 여기서 자신의 장기인 백병전을 벌인다는 발상의 전환을 시도한다. 바다에서 육박전을 벌인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이야기다. 당시 로마는 ‘까마귀’라는 신병기를 고안했다. 뱃머리에 단 간이 부교(浮橋)다. 끝에 갈고리가 부리처럼 생겨서 까마귀라고 했다. 적함과 조우하면 까마귀를 내려찍는다. 부교가 놓이면 로마의 자랑 중장보병대가 건너가 백병전으로 적함을 제압한다.
까마귀로 거둔 위대한 승리가 밀라이 해전이다. 로마의 창의성과 도전정신의 승리다. 사실 까마귀는 기동을 힘들게 한다는 치명적 약점이 있었다. 그러나 카르타고는 적을 얕보고, 아무런 정찰이나 탐색 없이 마구잡이로 달려든 탓에 패배했다. 어제 우리가 강했다고 오늘도 강하다는 보장은 없다. 무기, 재정, 수치화된 전력이 강하다고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전쟁사에선 용기와 헌신, 희생을 아는 민족만이 살아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