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풍파를 겪은 터라 시인에게 새해라고 딱히 별스러운 기대는 없다. ‘새해엔 또 어찌 될는지’란 말이 외려 불안스럽기까지 하다. 친한 친구가 몇 남지 않은 것도 더할 수 없는 서러움이니 이래저래 울적한 세밑이다. 당시 시인의 신분은 태자빈객(太子賓客). 태자를 보필하는 정3품의 고위직이지만 자신은 낙양(洛陽)에, 태자는 장안에 머물렀기에 긴밀하게 소통하진 못했다. 그래서 시인은 자조하듯 ‘한가하게 허송세월’한다고 말한다. 관리에게 한가함이란 주류 사회로부터 소외되어 외톨이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하릴없이 탄식만 할 수는 없는 노릇. 세상사 따지고 보면 전화위복도 허다하다. 시인은 그 한가함을 자유라 해석하고, 허송세월한 덕에 장수하였노라 자위한다. 세밑에 느닷없이 찾아온 ‘봄빛’은 또 얼마나 반가운가. 그것은 따사로운 자연의 은혜이자 다가올 삶의 광휘이리라.
세모라는 세월의 매듭에 이르면 한 해를 되돌아보고픈 마음이 절실해지는 게 인지상정. 어설피 시간을 흘려보냈다면 숙명처럼 후회나 아쉬움이 뒤따른다. 하지만 시인의 반추는 무덤덤하다. 환관 정치의 폐해를 혁파하려 나섰다가 오래 지방관으로 밀려나기도 했지만, 자기 최면이라도 걸듯 애써 마음을 추스른다. 세파의 상흔을 삭인 가슴은 새해 ‘봄빛’의 도래에 한껏 부풀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