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시인은 거울을 들여다보고 소설가는 창밖을 내다본다.” 김종길은 한 아름다운 시인을 소개하는 글에 이렇게 적었다. 시인은 자신을 거울삼아 세계를 파악하고, 소설가는 세계를 바라보면서 자아를 찾는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시인이 거울이 아니라, 창밖을 내다볼 때는 무엇을 볼까. 답은 이 시 속에 있다.
한 노시인이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한여름의 풍광을 옮겨오는데 표현이 맛깔나기 그지없다. 소나기는 멎었으나 매미 소리는 멎지 않았다. 소나기가 세상을 적시다가 그치니까 바로 매미 소리가 사방을 적신다. 비와 매미는 같지 않고, 물과 소리는 같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시인은 그런 건 편견이라면서 가볍게 치워 버린다.
한때의 세상은 소낙비에 듬뿍 젖어 있고, 다음 세상은 매미 소리에 담뿍 물들어 있다. 이후의 세상은 또 다른 무엇으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다정한 자연의 원리들이 있어서 이 세상을 차례차례 채우고 사라진다. 그 흐름을 고요히 보고 있는 시인은 ‘그래, 너희가 또 찾아왔구나’ 미소 짓는 듯하다. 시인은 이 시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쓰지 않았다. 그는 마음으로 보고 마음으로 듣고 썼다. 시인의 창밖에서 만나는 비와 더위는 꼭 와야만 해서 다시 온 것들이다. 잘 왔다가 잘 가기를. 내년에 우리 또 만나기를.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