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 10만 장. 5년 전만 해도 K팝 걸그룹에는 높은 벽이었다. 초동은 앨범 발매 후 일주일간 판매량(한터차트 기준). 2017년 트와이스가 스페셜 1집 ‘TWICEcoaster: LANE 2’로 초동 11만 장을 올려 걸그룹으로는 처음 10만 장을 넘기자 가요계는 반색했다.
2020년 블랙핑크가 ‘THE ALBUM’(68만 장)으로 초동 50만 장을 돌파하자 놀랍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초동 30만 장을 넘긴 걸그룹에 블랙핑크, 레드벨벳, 아이즈원, 아이브, 트와이스까지 5개 그룹이 이름을 올렸다.
올해 7월 8일 에스파가 발표한 두 번째 미니앨범 ‘Girls’가 초동 142만6000여 장을 기록하며 걸그룹 최초로 초동 100만 장을 돌파하자 “꿈의 수치를 달성했다”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팬덤 결집력이 강한 보이그룹 중 초동 100만 장 기록을 가진 건 방탄소년단(BTS), 세븐틴, NCT DREAM,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엔하이픈으로 5개뿐이다. 에스파의 무엇이 이를 가능하게 했을까.
먼저 여성 팬덤 확장을 꼽을 수 있다. 남성 팬덤에 비해 여성 팬덤은 결집력이 강해 여성 팬덤이 두터울수록 높은 초동을 확보하는 데 유리하다. 에스파는 당찬 가사, 여전사 콘셉트로 여성 팬을 확보했다. SM엔터테인먼트는 에스파의 데뷔곡 ‘Black Mamba’를 비롯해 ‘Next Level’ ‘Savage’ 등에 SM 뮤직 퍼포먼스(SMP) 콘셉트를 강하게 적용했다. SMP는 어두운 멜로디, 사회비판적 가사, 강렬한 보컬이 특징으로 H.O.T., 동방신기, 엑소 등 보이그룹이 계보를 이어 왔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씨스타, 카라, 소녀시대 등 기존 걸그룹은 귀여움과 섹시함을 강조했다. 에스파는 결이 완전히 다르다. 노래 제목부터 야만적이라는 뜻의 ‘Savage’를 발표했을 정도다. 에스파를 비롯한 있지(ITZY) 등 4세대 걸그룹은 걸크러시 콘셉트를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에서의 인기도 밀리언셀러 달성에 한몫했다. 에스파는 올해 북미 최대 대중음악 축제인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에 서면서 미국에서도 인지도를 쌓았다. 중국인 멤버 닝닝이 있어 중국에서 인기를 끌기에도 유리하다. 이번 앨범의 초동 가운데 중국의 비중은 최소 67만여 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초동의 절반 가량을 차지한 것.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는 “SM은 중국인 멤버로만 구성된 엑소엠(EXO-M)을 꾸렸을 정도로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해 노력해 왔다. SM 가수에 대한 중국의 선호도가 굉장히 높고, 에스파도 그 덕을 봤다”고 말했다.
엑소, NCT 등을 통해 세계관을 강조해 온 SM 전략이 통했다는 분석도 있다. 에스파는 SM 그룹 중에서도 세계관이 가장 강력하게 적용된 그룹으로 꼽힌다. 이수만 SM 총괄프로듀서는 “에스파가 SM 전체 세계관인 SMCU(SM 컬처 유니버스)의 포문을 여는 걸그룹”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에스파는 현실세계 멤버와 가상세계 멤버가 디지털 세계에서 소통하고 성장한다는 세계관도 매력적이라는 반응이다. 김 평론가는 “음악뿐 아니라 게임, 노래, 춤, 독보적 세계관까지 모두 담긴 문화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에스파의 앨범을 즐기는 팬이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재희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