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분별력을 교사로 삼으라고. 행위를 대사에, 대사를 행위에 맞추게, 자연스러운 절도를 넘어서지 않겠다는 특별사항을 지키면서.”―셰익스피어 ‘햄릿’ 중
영국 극작가 셰익스피어와 그의 작품 ‘햄릿’ 모두 너무나 유명하다. 너무 유명해서 막상 읽은 사람이 많지 않고, 자연히 그 의미의 정수를 누린 이들도 손에 꼽힌다. 대부분 고전이 그렇듯, 햄릿 역시 어린 시절 부모가 읽어준 그다지 재미없는 요약본으로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충분한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뒤 이 책을 다시 읽는다면 전혀 다른 기분이 들 것이다. 햄릿이 정말로 미친 것이 아닐까? 삼촌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증거가 없지 않은가? 왜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서 폭발해 모든 것을 그르칠까? 잘 만든 스릴러물처럼 이야기는 관객을 혼돈과 혼란으로 몰아넣고, 끊임없이 다양한 상상을 이끌어 낸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연작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 같은 그리스 비극에 대한 재현이자 중세의 역사 전통에 대한 재해석이기도 하다. 한편으론 고전의 품격을 되살렸고 다른 한편으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당대의 흥미로운 소재를 녹여내고 있다.
작품 속 햄릿은 배우들에게 연기를 지도하면서 분별력을 강조한다. 관객의 감탄을 끌어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절도 있는 분별력이다. 비단 연극뿐이겠는가. 어떤 일을 하건 대부분은 지나치거나 모자라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사실을 직시하고 정확한 분별력으로 궁극에 이를 때 많은 사람들이 인정해 준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셰익스피어는 가장 불안정한 인간 햄릿을 통해 가장 완벽한 작품을 만들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자리에서 안정적으로 일어서야 하지 않겠는가. 불안을 다독이고 극복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