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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화를 부른 시

Posted August. 19, 2022 07:50   

Updated August. 19, 2022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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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도관(玄都觀), 황실 소속 도교 사원 안에 복숭아꽃이 만발했다. 꽃구경을 마친 군자들의 수레가 지나자 흙먼지가 일고, 다들 한목소리로 꽃이 이쁘다 떠들어대니 아첨배의 부화뇌동 같아 영 마뜩잖다. 9년 전 시인이 좌천될 때만 해도 보이지 않던 복숭아나무들이 현도관 정원을 가득 채우고 있다니, 이 주체할 수 없는 격세지감은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안사(安史)의 난 이후 극심한 혼란을 겪은 중당 시기, 시인은 개혁 세력에 가담했지만 실패하고 남만(南蠻)의 땅 낭주(朗州·후난성)로 좌천되었다가 9년 만에 장안으로 귀환했다. 조정은 온통 신흥 권력의 독차지였고 시인은 그것을 ‘현도관의 많고 많은 복숭아나무’에 빗댔다. 세상이 확 바뀌었다는 세월 무상, 호기롭게 거리를 활보하는 군자들에게서 느끼는 이질감에 가슴이 먹먹했을 것이다.

 이 시가 장안에 퍼지자 시 속에 원망과 분노가 담겼노라고 무고한 자들이 있었다. 자신들을 마구잡이로 생겨난 세력이라 멸시하고 비꼬았다는 것이다. 바로 그해 시인은 재차 연주(連州·광둥성)로 좌천되었고 14년 만에야 장안으로 재복귀했다. 현도관을 다시 찾은 시인의 감회가 어땠을까. ‘넓은 정원 절반은 이끼에 뒤덮이고, 복사꽃 다 없어지고 유채꽃이 피었네. 복숭아나무 심던 도사들은 어디로 갔나. 전에 왔던 내가 지금 다시 왔거늘.’(‘다시 현도관을 노닐며’) 질기다면 질긴 인연을 되뇌며 시인은 사필귀정을 재확인하고 싶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