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사르는 갈리아 원정 때 게르만 기병을 용병으로 고용했다. 그의 사후에 로마군단은 게르만족과 혈투를 벌이며 다뉴브강까지 진출했다. 당시 로마인이 보기에 게르만족은 말 그대로 야만족이었다. 그때 로마의 장병 중에서 로마가 400년 후에 게르만족에게 멸망당하리라는 사실을 예감했던 사람이 있을까?
역사에는 서로 다른 민족과 국가가 처음 접촉하는 순간이 있다. 때때로 그 순간은 충격과 공포, 혹은 오만과 멸시로 채워지기도 한다. 어떤 사제들은 저런 야만족에게 영혼이 있겠냐는 학구적인(?) 의문을 던지기도 했다.
인류 역사상 수많은 제국들, 도저히 정복당하지 않을 것 같던 거대한 제국들이 이런 야만족 혹은 약소국에 의해 멸망했다. 역사가들도 그 원인에 대해 궁금해했다. 상식적인 답을 내기 힘들었던 사람들은 내부의 부패를 지목했다. ‘거대한 제국은 안으로부터 스스로 무너지는 것이다.’ 로마 제국의 멸망을 다룬 고전 영화에서도 마지막 장면을 이런 웅장한 멘트로 장식한다.
역사가들이 내부 붕괴에 예민했던 데는 선진 제국이 내부 기록을 충분히 남겼던 탓도 있다. 고도하고 발전한 사회일수록 내부도 복잡하고 사고도 많다. 잠들지 않는 도시와 시골의 차이처럼 말이다. 역사가도 제국에 많았고, 그들은 당연히 야만족의 내부 사정보다는 자신의 세상에 관심이 많았다.
사실은 약소국에 멸망당한 강대국보다 강대국에 흡수되거나 멸망당한 약소 부족이 훨씬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국에 대역전극이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역사가들이 자주 놓치는 사실은 승리하는 군대는 상대적으로 더 첨단이며, 더 전투적이고, 새로운 시스템에 더 잘 적응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반면 부유하고 나태해진 제국은 부조화의 병에 걸린다. 첨단 무기를 믿고 훈련과 전투 의지를 소홀히 하고, 돈에 의지해서 용병을 고용한다. 그러고는 인구, 경제력, 무장, 법제, 행정 같은 조화되지 않은 추상적 지표에 안주한다. 마침내 불타버린 궁전의 기둥을 보며 이렇게 한탄한다. “이 위대한 도시가 어떻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