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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섞이지 않는 불과 물의 사랑, 이민자인 제 이야기이기도”

“섞이지 않는 불과 물의 사랑, 이민자인 제 이야기이기도”

Posted May. 31, 2023 07:54   

Updated May. 31, 2023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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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만드는 동안 미국 이민자 출신의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가르쳐준 많은 것들은 대부분 그분들이 한국에서 자랄 때 배운 것들입니다. 그 가르침을 영화에 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을 들고 7년 만에 한국을 찾은 디즈니·픽사의 첫 한국계 감독 피터 손(46·사진)이 말했다. 손 감독이 자신의 첫 애니메이션 ‘굿 다이노’(2016년) 이후 두 번째로 한국 관객과 만나는 작품인 ‘엘리멘탈’은 물, 불, 흙, 나무라는 4원소가 서로 섞이지 않고 배척하는 ‘엘리멘트 시티’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이민자 2세대인 손 감독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한국인인 이채연 애니메이터도 제작에 참여했다. 영화는 27일(현지 시간) 끝난 제76회 칸 영화제에서 폐막작으로 상영돼 5분간 기립박수가 이어지는 등 호평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다음 달 14일 개봉한다.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30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손 감독은 ‘엘리멘탈’과 자신의 경험에 대해 말했다.

“제가 자란 미국 뉴욕의 한 동네에는 한국인도 있었고 인도, 멕시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어떤 커뮤니티는 서로 잘 섞여들었지만 어떤 곳은 그렇지 않았어요. 외국인 혐오나 차별을 겪기도 했는데 어떻게 해야 서로를 이해하고 차이점을 극복할 수 있을지를 작품에 담으려 했습니다.”

‘엘리멘탈’에서는 다혈질이지만 열정 넘치는 불 앰버와 유쾌하고 감성적인 물 웨이드가 만나 사랑에 빠진다. 앰버의 부모님은 오래전 불들만 모여 살던 파이어랜드를 떠나 엘리멘트 시티에 도착한다. 하지만 모든 걸 불태워 버리는 불의 특성 때문에 다른 원소들에게 배척당하고, 불들만 모여 있는 파이어타운에 둥지를 틀게 된다. 앰버는 어렸을 때부터 고생한 아버지의 식료품 가게를 물려받는 것이 자신의 꿈이라고 여기며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어느 날 파이프를 타고 떠내려 온 웨이드를 비롯해 다른 원소들과 만나며 자신의 진정한 꿈을 찾아 나선다.

영화는 다른 배경과 성질을 가진 존재들이 용기를 내 서로에게 다가가는 과정을 재치 있게 그렸다. 웨이드가 앰버의 아버지에게 잘 보이기 위해 맵고 뜨거운 음식을 삼키거나, 앰버가 웨이드의 가족을 만난 자리에서 깨진 유리 조각을 뜨거운 열로 이어 붙이는 능력을 보여주자 모두가 감탄하는 등 다른 문화가 섞이는 순간을 유쾌하게 표현했다. 앰버와 웨이드가 서로에게 다가가려 할 때 웨이드는 증발해 버릴까 봐, 앰버는 불이 꺼져 버릴까 봐 두려워하지만, 마침내 새로운 ‘케미스트리’를 만들어 내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다.

영화 곳곳에는 손 감독이 밝힌 것처럼 그의 삶이 녹아 있다. 손 감독의 부모님은 1960년대 말 미국으로 이민을 간 뒤 현지에서 식료품 가게를 운영했다. 손 감독은 “제가 첫째라 가게를 물려받게 돼 있었기 때문에 그림 그리는 것으로 (부모님과) 많이 싸웠다. 어머니가 그림을 찢어버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영화 속 파이어타운은 아시아 문화를 지닌 곳으로 묘사된다. 특히 멀리 떠나는 자식이 부모님에게 큰절을 하는 장면이 눈에 띈다. 손 감독은 “영어를 못 해도 손님들이 필요한 걸 다 알고 공감해준 아버지의 모습을 캐릭터에 녹이려 했다”며 “자라면서 느낀 다양한 사람들의 가치를 영화에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에서 한국 관객과 이 작품을 나눌 수 있어 정말 영광”이라고 덧붙였다.


최지선 aurink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