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뇌의 명석함만으로 일할 수 있는 햇수는 기껏해야 십 년 정도입니다. 그 기한을 넘어서면 두뇌의 명석함을 대신할 만한 좀 더 크고 영속적인 자질이 필요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중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노르웨이의 숲’, ‘IQ84’ 등으로 널리 알려진 소설가다. 그는 1979년 문단에 데뷔하여 약 45년 동안 전업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데,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어떻게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긴 공백기 없이 꾸준히 좋은 작품을 내며 활동할 수 있었는지를 특유의 담담하고 간결한 문체로 서술한 자전적 에세이다.
훌륭한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는 재능이 필요하다. 뛰어난 작품을 여럿 남긴 하루키는 분명 그러한 재능이 넘치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하루키는 자신이 반짝이는 재능으로 무장한 천재적인 예술가가 아닌, 꾸준함과 인내력, 단단한 의지와 같은 직업윤리와 자질을 갖춘 직업인일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소설가를 직업으로 삼으려면 천부적인 재능이 아니라 이러한 자질을 키우기 위한 후천적인 훈련에 의지해야 한다.
소설가는 아니지만 연구자이자 저술가인 나에게 학술 논문부터 연구서, 대중서, 칼럼 등 다양한 글을 읽고 쓰는 일은 직업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런데 다른 이가 쓴 통찰이나 혜안, 날카로운 분석을 담은 글을 보면 때로는 부러움을 느끼고, 심지어 ‘나는 왜 저런 번뜩이는 재능이 없을까’라는 질투나 자괴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타고난 재능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의지와 노력임을 깨닫게 된다. 사실 내가 연구자이자 저술가라는 직업을 갖게 된 것이 올해가 딱 10년 차다. 가뜩이나 천재적인 재능과 명석함이 무기가 아니었던 내가 이 일을 더 오랫동안 하려면, 이제는 하루키가 이야기한 ‘영속적인 자질’을 내재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