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소녀가 공원묘지에 홀로 앉아 있다. 흰 블라우스는 한쪽 어깨가 드러날 정도로 늘어나 흘러내리고, 큰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소녀는 겁먹은 얼굴로 오른쪽 위를 바라보고 있다. 무엇을 보는 것일까? 왜 여기에 있는 걸까?
외젠 들라크루아가 그린 ‘묘지에 있는 고아 소녀(1824년·사진)’는 전체적으로 외롭고 절망적인 인상을 준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그림 속 소녀는 부모를 잃은 고아다. 돌봐줄 친척도 갈 곳도 없는지 해 질 무렵 공원묘지에 홀로 있다.
들라크루아가 이 그림을 그린 건 20대 중반, 파리 살롱전에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신진 화가 시절이었다. 그는 원래 자신이 속한 19세기 현실이 아니라 신화나 문학에 관심이 많아 그런 주제들을 그렸다. 살롱전 데뷔작도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었다. 하지만 그리스 독립전쟁 소식을 듣자 당대의 정치적 사건을 다룬 역사화를 그려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1822년 4월 그리스를 지배하고 있던 오스만튀르크인들은 그리스인들이 독립전쟁을 일으키자 키오스섬 주민들을 잔인하게 학살하고 노예로 팔아넘겼다. 이 소식에 많은 유럽인들처럼 들라크루아는 분노했다. 화가는 학살자들의 만행을 고발하고 전쟁의 공포와 비참함을 알리기 위해 높이 4m의 대형 그림 ‘키오스섬의 학살’을 그렸다. 이 소녀 초상은 그 그림을 위한 사전 습작 중 하나다. 고아 소녀의 모습엔 화가 자신의 삶도 투영됐을 것이다. 들라크루아는 파리 상류층에서 태어났지만 7세에 아버지를, 16세에 어머니를 여의면서 고아가 됐다. 누이한테 의탁해 살면서 경제적으로도 힘든 시절을 겪었다.
불안한 시선으로 위를 올려다보는 고아 소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절망에 빠진 소녀는 지금 하늘을 보고 있는 듯하다. 마지막으로 신을 찾는 걸까? 아니면 신을 원망하고 있을까? 결국 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가장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약자들이라는 사실을 이 그림이 새삼 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