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까지 프로야구 NC의 에이스는 드류 루친스키였다. 2019년부터 작년까지 4년간 121경기에 등판해 53승 36패 평균자책점 3.06의 기록을 남겼다. 2020년 NC의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그는 국내 리그 활약을 발판 삼아 올해부터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오클랜드에서 뛰고 있다. 하지만 NC는 루친스키의 공백이 아쉽지 않다. 지난해까지 MLB 워싱턴에서 풀타임 선발로 뛰었던 에릭 페디가 루친스키의 빈자리를 너끈하게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한국 무대에 데뷔한 페디는 28일 두산과의 경기에 선발 등판해 6이닝 1피안타 1볼넷 6탈삼진 무실점으로 팀의 4-1 승리를 이끌었다. 전날까지 5연패 중이던 NC는 ‘뉴 에이스’ 페디의 호투로 연패 사슬을 끊었다. 이날 승리투수가 되면서 시즌 11승(1패)째를 거둔 페디는 평균자책점을 1.61로 낮추며 다승과 평균자책점 부문에서 모두 1위에 올랐다. 전완근 부상으로 등판 로테이션을 한 차례 거른 뒤 돌아온 첫 경기에서 승리를 따낸 페디는 “이런 성적을 내는 게 야구 선수로서의 꿈이자 목표였다”며 “NC의 모든 동료와 스태프 덕분이다. 무엇보다 1점대 평균자책점을 끝까지 유지하고 싶다. 현재 기록에 자부심을 느끼고 욕심도 난다”고 말했다.
페디는 이날 5회 1사까지 두산 타선을 퍼펙트로 막았다. 양석환에게 첫 안타를 내줬지만 후속 두 타자를 범타로 처리했다. 6회 첫 볼넷을 내준 뒤 송구 실책으로 맞은 1사 1, 2루 위기에선 허경민과 김재환을 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위기를 벗어났다. 페디는 이날 최고 시속 153km의 빠른 공에 컷 패스트볼, 체인지업, 커브 등 여러 변화구를 던졌다. 페디가 국내 리그 최고 투수로 순항하고 있는 데 대해 NC 포수 박세혁은 “똑바로 오는 공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페디는 강속구 투수 대부분이 던지는 포심 패스트볼 대신 싱커를 던진다. 시속 143∼153km로 조절해서 던지는 싱커는 아래 위 움직임이 좋다. 박세혁은 “시속 150km의 빠른 공이라도 한가운데로 들어오면 맞아 나간다. 하지만 페디의 싱커는 무브먼트가 좋은 데다 제구도 잘된다”고 말했다. 투구 분석에 따르면 이날 페디가 던진 공 79개 중엔 커브가 28개로 가장 많았다. 이 중에는 수직으로 떨어지는 일반적인 커브도 있었지만 MLB에서 유행하는 스위퍼(옆으로 많이 휘는 변형 슬라이더)도 있었다.
2014년 MLB 신인 드래프트 전체 18번째 지명을 받아 워싱턴에 입단한 페디는 지난해까지 워싱턴 선발 로테이션의 한 축이었다. 2019년 워싱턴의 월드시리즈 우승 멤버이기도 하다. MLB 통산 성적은 102경기 21승 33패 평균자책점 5.41이다. 페디는 지난 시즌 종료 후 자유계약선수(FA)가 됐는데 MLB 다른 팀들은 그에게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워싱턴의 제5선발이긴 했지만 승리(6승)보다는 패배(13패)가 2배 이상 많았고 내구성에도 의문 부호가 따랐기 때문이다. 잔부상이 잦았던 페디는 한 시즌 최다 이닝 투구가 2021년 기록한 29경기 133과 3분의 1이닝에 그쳤다. 선발투수인데 경기당 평균 5이닝을 채우지 못한 것이다.
페디가 외국인 선수 시장에 나오자 NC를 포함한 몇몇 국내 구단이 영입전에 뛰어들었다. 그의 에이전트인 스콧 보라스 측은 “NC가 가장 먼저 영입 제안을 했고 협상을 거쳐 입단을 결정했다”고 했다.
이헌재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