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우리를 구하러 오지 않고 있습니다.”
8일(현지 시간) 북아프리카 모로코 남서부 일대에서 발생한 규모 6.8의 강진으로 11일 현재 최소 2200명(업데이트)이 숨진 가운데 생존자를 구할 수 있는 72시간의 골든타임이 끝나가고 있지만 구조의 손길은 거의 닿지 않고 있다.
10일 지진 피해 지역인 아트라스 산맥의 한 마을에서는 남성 5명이 흙더미와 벽돌만 남은 집터에서 잔해에 깔린 가족을 찾기 위해 곡괭이로 땅을 파고 있었다. 이미 가족 3명의 주검을 수습했지만 실종된 가족들이 많아 손수 곡괭이를 들고 나선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이 남성들은 장갑도 끼지 않은 채 단 2개뿐인 곡괭이를 돌려쓰며 거대한 흙더미를 파헤쳤다”고 전했다. 맨손으로 잔해에 깔린 사람들을 끌어내리던 압델자릴 람그라리(33)가 “누군가가 구하러 올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다”고 NYT에 말했다. 주민 압데사마트 아이트 이히아(17)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도움이 전부인데, 정부나 구호요원을 본적이 없다”고 말했다.
인근 마을에 사는 라치드 보우디 씨 역시 이틀 밤을 꼬박 새우며 주민들과 자력으로 구조작업을 벌였다. 시신 9구를 수습하는 동안 구조 당국의 도움은 전혀 받지 못했다. 그는 “슬픔에 피로가 겹쳐 한명이라도 더 구조하겠다는 마음이 꺼져가고 있다. 이제 식수와 음식이 동났고 전기도 끊겼다”고 말했다.
지진 피해는 험준한 산악지역에 집중돼 구조대의 접근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진 잔해와 낙석으로 도로까지 끊겨 구호물자 배급도 헬기를 통해서만 가능할 정도로 열악하다. 사상 유례없는 대참사에 외부 지원이 절실한 상황임에도 모로코 정부는 ”구조작업에 혼선이 생길 수 있다”며 해외 구조대의 도움을 받는 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진 발생 직후 프랑스, 미국, 알제리, 이스라엘, 대만 등 여러 국가들이 손길을 내밀었지만 모로코 당국은 이들 국가들의 구조인력을 받지 않고 있다. 평소 우호 관계를 유지해온 스페인, 카타르, 영국, 아랍에미리트(UAE) 등 4개국의 지원 제안만을 받아들인 상태다.
국왕 중심의 강력한 중앙집권통치가 유지되는 모로코는 국왕이 총리를 사실상 지휘한다. 국가 위기 시 국왕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모로코 국왕인 모하메드 6세는 지진 발생 12시간 뒤에야 “군대에 구조를 위해 노력할 것을 지시했다”는 짤막한 성명만 발표했다. 해외 정부와 민간단체들이 “지진 현장에 구조대를 당장 파견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지만 모로코 당국은 “아직 국왕의 승인이 떨어지지 않았다”는 입장을 반복하며 골든타임을 허비하고 있다.
마라케시=김기윤 특파원 clear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