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슬러 호머는 19세기 미국에서 가장 뛰어난 화가 중 한 명이다. 그는 대도시 뉴욕에서 활동하던 36세 때 ‘채찍을 끊어라(1872년·사진)’를 그렸다. 시골 아이들의 놀이 장면을 포착한 이 그림은 그가 1860년대에 몰두했던 전쟁화와는 완전히 다른 주제다. 호머는 갑자기 왜 아이들을 주제로 택했을까?
호머는 시골에서 자라면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고교 졸업 후 인쇄공과 잡지사 삽화가로 경력을 쌓은 뒤 거의 독학으로 화가가 되었다. 남북전쟁 시기엔 최전선에 투입돼 전쟁의 현장을 생생하게 스케치했다. 이를 바탕으로 제작한 유화들은 국립아카데미에 전시돼 크게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전쟁화는 그를 지치게 만들었다. 전쟁이 끝난 후 모두에게 치유가 필요하던 시기, 호머는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주제로 선회했다. 바로 시골 학교 아이들의 놀이 장면이었다. 한 무리의 아이들이 들판에서 신나게 뛰어놀고 있다. 뒤에 보이는 빨간 건물은 학교다. 뒷산은 온통 초록이고 들판에는 꽃이 피었다. 아이들은 지금 ‘채찍을 끊어라’라는 옛날 놀이를 하는 중이다. 잡은 손이 끊어지지 않게 사슬이 되어 서로를 붙잡고 버티며 달리고 있다. 왼쪽 두 아이는 안타깝게도 끊어져 넘어졌다. 그래도 모두 신나 보인다.
당시 미국은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많은 농민들이 농촌을 떠났던 시기라, 시골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호머의 그림은 발표되자마자 큰 인기를 끌었다. 화가 자신도 가장 좋아했던 그림이었기에 같은 주제로 여러 버전을 그렸다.
학교를 뜻하는 영어 단어 ‘스쿨(school)’은 여가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스콜레(schol)’에서 유래했다. 학교는 원래 또래들과 놀면서 배우는 장소였다. 그림 속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서로 의존하고 협업하고 넘어졌다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배우는 중이다. 화가는 비좁은 교실에서 얻은 지식보다 놀이에서 체득한 배움이 삶에 더 유익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