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미국 뉴욕 맨해튼 코리아타운에서 있었던 일이다. 월가의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신입사원 100명 중 유이한 한국계였던 마이크 주 뱅크오브아메리카 투자은행(IB) 부문 최고운영책임자(COO)와 샌더 허 매니징 디렉터가 김치찌개를 먹으며 서로 어려움을 털어놨다. 배타적인 미 월가에서 소수인 한국계는 조언을 들을 기회가 없어 막막했기 때문이다.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은 달라졌다. 13일(현지 시간) 뉴욕 뱅크오브아메리카 콘퍼런스센터에서 열린 ‘코리아 스타트업 포럼 뉴욕’에 참석한 주 COO는 “젊고 똑똑하고 더 멋져진 한국인과 한국계 미국인들이 월가에 서서히 많아져 2명으로 시작했던 모임이 지금은 수천 명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부모님 세대는 경쟁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지만 우리 세대는 달라져야 한다”며 “한국계가 월가를 넘어 실리콘밸리의 테크 업계 등 스타트업과도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허 디렉터도 “월가의 유대계 네트워크에 비하면 이제 시작”이라며 “이번 포럼은 실패와 성공담을 들을 수 있는 것은 귀한 자리다. 서로 도와야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중소벤처기업부 창업진흥원, 한국무역협회 뉴욕지부, 헬스케어 기업 눔(NOOM), 벤처캐피털 프라이머 사제 파트너스 등이 주최한 코리아 스타트업 포럼도 미 월가와 실리콘밸리를 이어 ‘K스타트업 생태계’를 확대하자는 취지로 열렸다. 미 전역의 창업가와 투자자 등 약 500명이 모였다. 한국에서 날아온 기업인들도 있었다. 모바일 마케팅 솔루션 회사인 에어브리지의 박수민 매니저는 “미국 진출을 앞두고 노하우를 알고 싶어 왔다”고 말했다.
이번 포럼 개최는 미 금융, 테크 기업, 한국 정부의 협력으로 시작됐다. 프라이머 사제 파트너스 이기하 대표와 해외 창업 1세대로 꼽히는 눔의 정세주 의장, 뉴욕총영사관의 권영희 상무관이 의기투합한 것이다.
암모니아 기반 수소 연료 전지 ‘아모지’, 반려견 교류 서비스 ‘모모프로젝트’ 등 창업자 50여 명도 참여해 경험을 나눴다. 해외 창업 1세대로 꼽히며 ‘데카콘’(기업가치 100억 달러 이상 스타트업) 등극을 앞둔 눔의 정 의장은 “한국말로는 유창하게 회사 설명을 하지만 영어 울렁증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 끊임없이 준비하는 수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또 “투자자들은 e메일만 읽어도 절박감을 알 수 있고, 그런 스타트업은 투자 매력도가 떨어진다”며 “급할 때 투자 유치는 피해야 한다. 차라리 매달 회사의 성장 과정을 보내고 신뢰를 쌓는 게 좋다”고 말했다.
김현수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