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 마약 사태가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이선균, 지드래곤 등 배우 및 가수, 작곡가까지 마약 투약 정황이 드러나며 연예계를 파고든 마약 실태가 충격을 안겼다. 영화 ‘기생충’(2019년) 드라마 ‘오징어 게임’(2021년)을 비롯해 그룹 ‘방탄소년단(BTS)’ 등의 연이은 성공으로 전 세계에서 큰 사랑을 받는 ‘K컬처’에 악재로 작용한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이선균 유아인이 날린 제작비만 940억 원
이선균이 마약 투약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되자 팬데믹으로 인한 타격에서 아직 회복하지 못한 한국 영화계는 더욱 침체되는 분위기다.
올해 개봉할 예정이던 제작비 200억 원의 영화 ‘탈출: PROJECT SILENCE’는 개봉이 무기한 연기됐다. ‘탈출…’은 5월 칸영화제에 초청받은 뒤 해외 판매에도 열을 올리고 있었지만 이 역시 모두 중단된 상태다. 제작비 약 90억 원이 든 영화 ‘행복의 나라’ 역시 촬영을 마치고 후반 작업 중이었으나 올스톱됐다. 드라마 ‘노 웨이 아웃’은 첫 촬영을 앞두고 있었지만 이선균이 하차하면서 대체할 배우를 찾고 있고, 그가 주인공인 ‘Dr.브레인 시즌2’는 제작이 불투명해졌다.
앞서 올해 3월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은 배우 유아인 역시 영화 ‘승부’ ‘하이파이브’와 넷플릭스 시리즈 ‘종말의 바보’ 공개를 앞두고 있었지만 모두 무기한 연기됐다. 세 작품의 제작비는 총 650억 원이다. 이선균, 유아인 두 배우가 출연했다가 개봉이 연기된 작품 제작비만 약 940억 원에 달한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팬데믹 이후 한국 영화에 대한 투자가 이전만큼 회복되지 않고 있는데 마약 사태까지 벌어져 걱정이 크다”며 “배우들의 마약 투약 관련 루머만 돌아도 제작·투자사들이 긴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신도 이번 사태를 주목하고 있다. 미국 버라이어티지는 “오스카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의 스타 이선균이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며 “이선균은 ‘기생충’으로 미국 배우조합상도 받은 유명 배우”라고 보도했다. 미국 할리우드리포터 역시 이선균의 소식을 전하며 “한국 연예계에서 최근 마약 관련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배우들의 일탈이 한국 영화·콘텐츠업계 투자에 리스크가 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배우 개인의 책임을 실효성 있게 묻기는 쉽지 않은 실정이다. 작품마다 계약서가 제각각이고, 위약금 조항 유무와 배상 수준도 천차만별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의 출연료에 비례해 위약금 조항을 넣지만 수백억 원의 콘텐츠 투자금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한 투자·배급사 관계자는 “인적 네트워크가 중요한 사업이어서 문제를 일으킨 배우의 소속사와 법적 공방을 벌이기도 쉽지 않다”고 했다.
● 아이돌 그룹, 한 명만 추락해도 도미노 붕괴
지드래곤이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25일 불구속 입건되자 일본 최대 포털사이트 야후저팬의 메인 화면에도 지드래곤의 입건 뉴스가 올라오며 화제가 됐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지드래곤이 불법 약물 복용 혐의를 받는 등 한국 연예계에서 유명인의 약물 의혹이 잇따라 불거지고 있다”며 이번 사태를 K콘텐츠 산업의 위기로 진단했다. 마약 투약 혐의로 처벌받으면 지드래곤은 향후 약물 관련 범죄에 민감한 일본 활동이 불가능해진다고도 덧붙였다. 중국의 대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웨이보에도 지드래곤의 최근 모습이 게재되면서 ‘지드래곤’이 검색 랭킹 4위에 올랐다. 미국 포브스는 “마약 투약에 혐의로 해당 연예인의 경력은 무너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아이돌 그룹은 멤버 한 명의 마약 투약이 팀 활동에 큰 제약으로 작용한다. 2019년 YG엔터테인먼트 소속 그룹 아이콘의 리더 비아이가 마약 사건으로 입건된 후 탈퇴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리더이자 프로듀싱 멤버였던 비아이의 탈퇴 후 아이콘의 팬덤 규모나 활동 범위는 현격히 줄었다. 앞서 그룹 위너 출신 남태현은 필로폰 투약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고, 작곡가이자 가수 돈스파이크는 필로폰 및 엑스터시 투약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K콘텐츠 위상과 영향력이 단시간에 높아지면서 연예인들도 그에 맞는 책임감을 가져야 했지만 실제로는 부족했다”며 “몇몇 사람에 의해 K콘텐츠에 대한 신뢰가 훼손되지 않으려면 연예인들이 자신의 영향력과 파장을 제대로 인식하고 엄격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지선 aurink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