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의 화가가 이젤 앞에 앉아 있다. 한 손엔 스케치로 보이는 종이를 들고, 다른 손엔 연필을 쥔 채 몸을 돌려 화면 밖을 응시하고 있다. 남자처럼 짧은 머리를 하고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림 속 여성은 대체 누굴까?
이 그림은 미국 화가 애나 클럼키가 그린 ‘로자 보뇌르의 초상’(1898년·사진)이다. 보뇌르는 19세기 프랑스에서 동물 화가로 최고의 명성을 누렸던 화가다. 클럼키는 21세가 되던 1880년 파리로 와서 8년간 미술 공부를 한 후 보스턴에서 초상화가로 활동했다. 10년 후, 그는 다시 파리로 왔다. 어릴 때부터 흠모하고 존경했던 보뇌르의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서였다. 보뇌르는 겨우 27세 때 밭갈이하는 황소들을 그린 ‘니베르네에서의 밭갈이’로 살롱전에서 대상을 차지해 화단의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말이나 소들을 생동감 있게 그리기 위해 직접 도살장이나 거친 말 시장을 찾는 등 여성 화가로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그는 일상 속에서도 관습에 도전하고 싸웠다. 머리를 짧게 잘랐고, 바지를 입었으며, 담배를 피우고, 여성을 사랑했다. 당시 여성에게 금기시된 것들이었다.
이 초상화를 그릴 당시 클럼키는 42세, 보뇌르는 76세였다. 클럼키는 존경하는 선배 화가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보뇌르는 이방인 후배 화가의 모델이 되면서 서로에게 호감을 느꼈다. 클럼키는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보뇌르 곁에 남았다. 보뇌르는 젊은 화가를 위해 작업실을 만들어 주었고, 보답으로 클럼키는 노화가의 초상화를 그렸다.
두 여성의 우정과 사랑은 이듬해 보뇌르가 사망한 후에도 지속됐다. 보뇌르의 집과 작업실을 물려받은 클럼키는 여성들을 위한 미술학교를 열고 미술관을 세우는 등 보뇌르의 업적을 알리기 위해 평생을 헌신했다. 그러고는 43년 후 보뇌르 곁에 나란히 묻혔다. 여성은 전문 직업을 갖는 것도 힘들던 19세기에, 화가로 성공하기 위해 싸우고 도전했던, 그리고 사랑하고 연대했던 위대한 여성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