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의 아이유는 ‘좋은 날’의 열일곱 아이유를 넘어설 수 있을까. 드라마 ‘나의 아저씨’, 영화 ‘브로커’ 등의 작품으로 배우 이지은으로 영역을 넓히며 고군분투해 온 아이유가 본업인 ‘가수’로 돌아왔다. 신보 ‘더 위닝’을 발표하고 월드투어에 나서며 승부수를 던진 것. 새 앨범 무대가 처음으로 소개된 ‘아이유 H.E.R. 월드투어 콘서트’ 공연이 10일 언론에 공개됐다.
서울 송파구 KSPO돔(체조경기장)에서 진행된 이번 콘서트는 아이유가 2022년 한국 여성 가수 최초로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단독 콘서트를 가진 뒤 1년 6개월 만에 연 공연이었다. 콘서트명 ‘H.E.R’에 맞춰 1부 힙노틱(Hypnotic·최면에 걸린), 2부 에너제틱(Energetic·활기찬), 3부 로맨틱(Romantic·낭만적인) 그리고 4부 엑스테틱(Ecstatic·황홀한)으로 구성된 공연은 “꽃으로 피려고 생각했다 홀씨가 되기로 한” 아이유의 서사를 보여줬다.
‘홀씨’로 시작한 1부 공연은 마지막 곡 ‘오블리비아테(Obliviate)’가 인상적이었다. 기억을 지운다는 의미의 가사를 담은 이 노래를 부르기 전 아이유는 “제가 주문을 외우면 모두 기억을 지워 달라”고 했다. 곡을 재치 있게 소개하는 멘트였지만, 대표곡 ‘좋은 날’과 ‘팔레트’로 기억되던 자신을 잊어달라는 의미로도 읽혔다.
10년 전부터 아이유의 콘서트를 관람해 온 이재욱 씨(25)는 “2022년 콘서트에서 예고한 대로 ‘좋은 날’과 ‘팔레트’가 빠졌다”며 “특히 ‘좋은 날’은 콘서트 2부의 마지막, 즉 클라이맥스를 담당했던 곡이었기에 그간 ‘좋은 날’을 위해 달려가는 구성이 약간 정형화된 느낌이 있었다면, 이번엔 공연에선 좀처럼 보지 못했던 색다른 곡이 나와 돋보였다”고 덧붙였다.
또 4부에서는 빨간 가죽 재킷과 검은 부츠를 착용하고 등장해 ‘Shopper’와 ‘Love Wins All’ 등 새 앨범 수록곡을 불렀다. 새 앨범을 내며 “남들이 괴짜라 평가하거나 별로라고 해도 나만의 승리를 이루겠다”고 한 것처럼 조심스러움을 조금 버리고 가창도 더 과감하게 지르면서 30대의 자신만만한 느낌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아이유가 가장 잘하고 능숙해 보이는 것은 팬들과의 끈끈한 관계였다. 아이유는 공연 중 시종일관 관객에게 노래를 따라 불러 달라거나 ‘잘하고 있다’고 격려하며 자신을 내세우기보단 ‘함께’의 의미를 강조했다. ‘밤 편지’를 부를 때는 “관객의 목소리와 섞어 부를 때 나쁜 게 걸러지고 정화되는 곡”이라며 “일흔한 살까지 체조(경기장)를 채우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했다. 팬들 역시 각 노래에 맞춰 준비된 응원 구호와 ‘떼창’으로 화답했다. 아이유는 이날 30여 곡의 노래를 열창했다.
아이유는 일본 요코하마, 대만 타이베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북미 지역(6곳) 등에서 투어를 이어간다. 또 9월 21, 22일에는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앙코르 콘서트를 개최한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단독 콘서트를 여는 건 K팝 여성 솔로 가수 중 아이유가 처음이다.
김민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