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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총리 연설 방해에도 ‘입틀막’은 없었다

獨총리 연설 방해에도 ‘입틀막’은 없었다

Posted March. 27, 2024 07:36   

Updated March. 27, 2024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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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독일에선 올라프 숄츠 총리의 연설이 논란이 됐다. 숄츠 총리는 20일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도서전에서 연설에 나섰다가 여러 차례 중단해야만 했다. 연설 도중 관중 세 명이 돌아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기 때문이다. 총리실이나 행사 주최 측으로선 작지 않은 사고였다.

소셜미디어에 퍼진 이날 영상을 보면 한 여성이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영어로 40초 넘게 “숄츠 씨, 당신은 민주주의를 논할 수 없다. 당신이 모은 돈과 무기가 가자와 서안지구에 있는 수천 명의 팔레스타인인을 죽이고 있다”고 외쳤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다른 쪽에서 한 남성이 우뚝 서서 “이스라엘에 무기 보내는 걸 중단하라”, “당신은 (전쟁) 공범이다”라고 소리쳤다. 또 다른 여성도 독일어로 약 40초간 분노에 찬 목소리를 냈다.

총리 연설이 여러 차례 중단되는 사고에 총리실 등 관계자들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영어로 연설한 여성에겐 행사 관리자로 보이는 한 중년 여성이 다가와 설득하기 시작했다. 가까운 곳에서 촬영된 영상에도 소리가 안 들릴 정도로 속삭이며 여성을 다독였다. 마지막으로 나선 남성은 결국 경호원들에게 이끌려 행사장을 나갔다. 하지만 반복된 고성에도 요즘 국내에서 회자되는 ‘입틀막(입 틀어막기)’은 보이지 않았다. 이 남성은 행사장에서 퇴장당하는 순간까지 약 20초간 총리를 비난했다.

어쩌면 독일 총리실도 내심 강경하게 대응하고 싶었을 수 있다. 요즘 숄츠 총리는 경기 침체에다 하마스와 전쟁 중인 이스라엘을 초기에 강력히 지지한 탓에 인기가 추락하며 신경이 곤두서 있다. 지난해 9월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17%까지 곤두박질쳤고, 최근에도 20%대로 크게 회복되질 못하고 있다. 응답자의 64.3%가 ‘숄츠 총리가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국방장관에게 총리직을 넘기길 원한다’고 답해 숄츠 총리에게 굴욕을 안겼을 정도다.

이런 분위기에도 숄츠 총리는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잠시 연설을 멈추고 객석에 나온 반대 목소리를 들었다. 그 뒤 “소리를 지르는 것과 민주주의를 혼동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분들께 이 대화와 이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길 다시 한번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답했다. 이에 또 다른 야유도 나왔지만, 대부분은 차분하게 박수를 보냈다. 현지에선 ‘총리가 평정심을 잃지 않고 잘 대응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물론 독일에서도 총리의 연설을 방해한 이들에 대한 비판이 없지 않다. 하지만 다소 매너는 아니었더라도 ‘표현의 자유’라는 대의에 수긍하는 반응이 훨씬 많다. 독일 역시 과거 국가와 민족을 앞세워 개인의 자유를 억압했던 전체주의 역사를 겪었다. 그래서 더욱 누구의 입도 함부로 막아선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 만약 총리의 연설을 방해한 시민들이 어디처럼 ‘입틀막’으로 제지를 당했다면 엄청난 역풍이 불었을 것이다.

다른 유럽 지도자들도 마찬가지다. 불리한 여건에 처해도 소통을 멈추지 않는다. 숄츠 못지않게 요즘 국민들에게 인기가 없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그렇다. 계란 세례에 심지어 뺨까지 맞았으면서도 현장으로 달려가 대화를 시도한다. 그가 20%대 지지율에도 연금 개혁, 이민 개혁 등 각종 개혁 릴레이를 이어갈 수 있는 동력은 이런 끝없는 소통 노력 덕분이란 게 현지 반응이다.

마크롱 대통령이 3년 전 한 시민에게 뺨을 맞은 직후 현지 인터뷰에서 했던 말은 지금 우리 정치권에 던지는 충고로 손색이 없다. “국민들 중엔 항상 (폭력적인) 소수가 있다. 하지만 압도적인 다수는 근본적인 문제에 관심이 있다. 그렇기에 난 토론을 멈추지 않는다.” 근본적인 답을 찾으려면 소통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