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父) 김성배, 모(母) 임오조의 장녀 종희(일명 공주님).” 1979년 아버지 김성배 씨가 결혼을 앞둔 큰딸의 결혼을 기념해 원고지에 적은 글이다. 성인이 된 딸을 ‘공주님’으로 부르는 아버지의 사랑이 묻어난다. 김 씨는 양가 상견례와 결혼식은 물론이고 신혼여행과 신랑 측 함이 들어오는 날 일정까지 정성스레 적었다. 김 씨는 딸이 출산한 1984년 사위에게 손녀의 이름을 직접 지어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가정의달을 맞아 기획전시실2에서 이 같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룬 기획전 ‘아버지’를 지난달 30일부터 선보이고 있다. 총 3부 외 인터뷰 공간, 수집 자료 공간 등으로 다채롭게 구성된 전시에선 아버지 144명의 마음이 담긴 소장품과 자료 등 150여 점을 볼 수 있다.
특히 2부 ‘요즘 아빠&호랑이 아버지’에서 다산 정약용(1762∼1836)의 자식들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전남 강진에서 유배 중이던 정약용은 1810년 부인 홍씨가 보낸 노을빛 치마를 잘라 만든 서첩 ‘하피첩’에 자식들에게 전할 글을 적었다. “몸과 마음을 닦으며 근검하게 살아라”, “학문과 처세술을 익혀 훗날을 대비하라” 등과 같은 교훈이 주로 적혀 있다. 박물관 변정숙 학예연구사는 “조선시대 아버지는 마냥 엄했을 것 같지만 자식에 대한 애틋함만큼은 요즘 아버지 못지않았다”고 말했다. 2010년 보물로 지정된 하피첩은 보존 관리를 위해 이달 13일까지만 공개된다.
1934년 김교철(1880∼?)이라는 인물이 아들 정옥의 돌을 기념해 만든 ‘천인천자문(千人千字文)’도 볼 수 있다. 천 명의 지혜가 아이에게 전해져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천 명의 지인들에게 한 글자씩 부탁해 만든 천자문이다.
‘100인의 기억’이라는 이름의 자료 공간에서는 시민 100명이 아버지의 추억을 떠올리며 박물관에 기증한 물건들을 볼 수 있다. 딸 정다솜 씨(33)는 아버지의 암 치료 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떠난 여행에서 아버지가 사준 부채를 기증했다. 정 씨는 “여행지의 무더운 날씨에 힘들어하는 내게 아버지가 사준 부채”라며 “매년 여름이 되면 아버지와 함께한 여행을 떠올리며 아버지의 사랑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들 이건욱 씨(53)는 유학을 떠나던 1995년 아버지가 선물한 만년필을 간직하고 있었다. 이 씨는 “30년간 늘 이것으로 메모하고 글을 써왔다”며 “(만년필로 쓴 글을 보면) 색은 바랬는데 무언가 고풍스러워 보인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구두, 월급봉투 등 고단한 밥벌이에 나서던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릴 소장품도 다양하게 선보인다. 항암 치료로 듬성듬성해진 머리카락을 감추고자 딸 결혼식에 썼던 모자처럼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소장품도 많다.
1996년 100만 부가 팔려 신드롬을 일으킨 김정현의 소설 ‘아버지’, 2004년 나온 동요 ‘아빠 힘내세요’ 등 아버지에 관한 도서와 음악도 즐길 수 있다. 또 부스에 마련된 다이얼 전화 2대를 통해 각각 들을 수 있는 아버지가 자녀에게, 자녀들이 아버지에게 남긴 육성도 잔잔한 감동을 준다. 전시는 7월 15일까지. 무료.
사지원 4g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