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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지도자를 키우지 못하는 나라

Posted July. 12, 2024 08:13   

Updated July. 12, 2024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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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고령 리스크에 휘청이는 민주당을 두고 “그 많은 정치인 중에 정말 대안이 없느냐”는 탄식이 쏟아진다. 그러나 불과 4년 전 민주당 대선 경선에 나섰던 후보만 해도 서른 명에 육박했던 것을 기억하시는지. TV토론 참가 조건을 충족해 카메라 앞에 선 후보만 20명. 이틀간 10명씩 나눠서 진행된 토론 무대는 빡빡했다. 고령의 상원 중진부터 아시아계 젊은 사업가까지 각자의 강점을 내세운 후보들이 짧게 배분된 발언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려 안간힘을 썼다.

후보들은 하나씩 떨어져 나갔다. 한때 선두였던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급진적인 정책 논란으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너무 왼쪽에 치우쳐 있다는 지적에 고령의 나이까지 발목을 잡았다. 세계적 부호인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도 집중포화를 맞은 TV토론에서의 방어 실패와 ‘정치 철새’ 논란 등을 버티지 못했다.

당시 후보들 중 지금 바이든 대통령의 대안으로 거론되는 이는 찾기 어렵다. 다시 이름이 오르내리는 이는 최연소 후보였던 피트 부티지지 교통부 장관 정도인데 그는 성소수자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있다. 탈락한 패자의 이미지, 경선 과정에서 노출된 흠집 등도 이들의 재도전을 막는 이유가 됐을 것이다. 설령 다시 뛰어 볼 의사가 있다고 해도 이미 공화당에 넘어간 하원에 이어 상원까지 흔들리는 상황에서 한 자리라도 지켜야 하는 의원들이 쉽게 움직이긴 어렵다.

새로운 이름들이 없는 건 아니다. 뒤늦게 대안 찾기에 나선 민주당 안팎에서는 7, 8명 정도가 거론된다. 이번엔 주로 주지사들인데, 중앙정치에서의 정치력이 검증되지 않았거나 전국 단위 인지도가 약하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그나마 현실성 있는 카드지만, 현재 지지도가 바이든 대통령보다도 낮다. 오죽하면 정치할 생각이 없다는 미셸 오바마 여사가 가상 대결에서 1위에 올라 있는 상황이다.

국가 지도자는 하루아침에 탄생하지 않는다. 반짝이는 가능성을 보였다고 해도 정글 같은 정치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리더십을 훈련받으며 세력을 불려가는 데 상당한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한다. 중앙무대에 설 기회를 주고 굵직한 프로젝트를 맡겨 역량을 검증하고 언론에 노출시키면서 지지 기반을 넓혀 주는 ‘작업’이 이뤄진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2004년 전당대회 연설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직후부터 민주당 지도부가 그를 대통령 후보감으로 점찍고 키워낸 스토리는 잘 알려져 있다.

민주당에는 이제 그런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것 같다. 현직 대통령이 재선 의지를 다지며 버티고 있으니 잠재적 경쟁자를 키울 여지가 크지는 않다. 그렇더라도 바이든 대통령의 82세 리스크를 감안했으면 대비했어야 했다. 본인도 첫 출마 당시에는 “나는 국가의 미래인 차세대 리더들의 중간다리 역할”이라고 했었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그는 대선을 불과 4개월 앞두고 재앙적 수준의 내부 혼란에 직면해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조롱당하는 것도 모자라 아예 정권을 빼앗길 판이다.

진퇴양난에 빠진 미국 여당의 처지는 여의도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잖다. 가능성을 주목받았던 여당 대표들이 대통령실 개입설에 흔들리며 줄줄이 떨어져 나간 게 최근 한국 정치의 현주소다.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한동훈 후보의 김건희 여사 문자 ‘읽씹’ 논란으로 자폭 직전이다. 물고 뜯고 싸우며 서로 끌어내리는 과정에서 후보들이 받은 상처는 회복이 쉽지 않을 것이다. 성한 상태로 차기를 기약할 잠룡들이 남아나지 않을 판이다. 이대로면 우리도 3년 뒤 미국 같은 인재난에 빠지지 말란 법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