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 가도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 하나도 없어요.”
파리 올림픽에 출전하는 한국 펜싱 여자 사브르 대표팀 윤지수(31·사진)는 이렇게 말하면서 “메달만 목에 걸면 한국에 돌아와서 김치찌개만 먹어도 된다”고 했다. 파리에 에펠탑, 루브르 박물관, 명품 상점이 늘어선 샹젤리제 거리가 있다는 건 윤지수도 알고 있다. 파리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알리려다 보니 이런 표현을 하게 됐을 것이다.
윤지수는 이번 파리 대회가 세 번째 참가하는 올림픽이다. 앞서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2021년 도쿄 대회 땐 여자 사브르 대표팀 막내였는데 이번엔 맏언니로 팀을 이끈다. 윤지수가 국가대표 선수 생활 내내 의지했던 언니 김지연(36)은 도쿄 올림픽에서 한국 여자 펜싱의 사브르 단체전 첫 메달(동메달)을 이끈 뒤 지난해 국가대표에서 은퇴했다. 파리 올림픽 여자 사브르 대표팀 막내 전하영(23)은 윤지수보다 여덟 살이 어리다.
윤지수는 지난해 사브르 대표팀 주장이 됐다. 주장을 맡고 처음 출전한 국제종합대회인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선 개인전 금메달과 단체전 동메달을 땄다. 파리 올림픽에서도 개인전과 단체전 모두 시상대에 오르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 단일 올림픽 펜싱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모두 메달을 딴 한국 선수는 남자 사브르의 김정환이 유일하다. 김정환은 도쿄 올림픽에서 개인전 동메달, 단체전 금메달을 차지했다.
대표팀 막내 시절 윤지수는 개인전보다는 단체전에서 더 잘했다. 팀이 뒤지고 있을 때마다 점수 차를 좁히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하지만 주장이 된 뒤로는 단체전에서 고전했다. 윤지수는 파리 올림픽 개막 전 마지막으로 출전한 지난달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도 개인전은 은메달, 단체전은 동메달을 땄다. 이 대회 단체전에서 한국이 우승하지 못한 종목은 여자 사브르뿐이어서 윤지수는 속이 더 쓰렸다.
윤지수는 “‘내가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 강했다. 남자 사브르에선 오상욱, 여자 에페에선 송세라 같은 에이스들이 잘해줘서 금메달을 가져오는데 ‘나는 왜 이렇게 못 해줄까’ 싶었다”며 지난달 아시아선수권대회를 돌아봤다. 그러면서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따라온다는 믿음이 있었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다른 종목 에이스들을 못 따라가는 것 같았다.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나’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윤지수는 흔들릴 때마다 ‘꽃은 저마다 피는 계절이 다르다’는 말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는 “국가대표로 12년 동안 훈련하며 그동안 보내온 과정들을 믿으려 한다”고 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외로운 길을 먼저 걸었던 멘토도 가까이 있다. 프로야구 롯데에서 투수로 활약하며 ‘고독한 황태자’로 불렸던 윤학길 한국야구위원회(KBO) 재능기부위원(64)이 윤지수의 아버지다.
윤지수는 “아빠가 저한테는 운동 얘기를 잘 안 하신다. 그런데 엄마가 ‘지수가 이번 아시아선수권 단체전에서 동메달에 그쳐 상심이 크다’고 했더니 아빠가 ‘중요한 건 올림픽인데 상심할 필요가 뭐 있냐,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얘기하셨다더라”고 했다.
펜싱 국가대표팀은 20일 결전지 파리로 출국한다. 윤지수가 출전하는 여자 사브르 단체전은 한국 펜싱 대표팀 경기 일정 중 가장 마지막인 8월 4일에 메달 주인공이 결정된다. 윤지수는 “사브르 단체전이 마지막 경기인 만큼 더 멋있는 무대로 만들겠다”고 각오를 남겼다.
임보미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