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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용적인 대안을 찾아서”… 더 깊어진 ‘예술의 바다’

“포용적인 대안을 찾아서”… 더 깊어진 ‘예술의 바다’

Posted August. 20, 2024 08:44   

Updated August. 20, 2024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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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난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지는 그림 앞에 쌀 포대가 놓여 있다. 스피커에서는 시위 현장에서 부르는 듯한 노래가 흘러나온다. 정치·사회적 불안과 직결됐던 인도네시아의 쌀값 폭등 문제를 다룬 예술 그룹 타링 파디의 작품 ‘메메디 사와/허수아비’가 부산현대미술관 1층에 설치됐다.

이 작품을 마주 보는 벽면은 윤석남의 ‘여성 독립운동가 초상’ 시리즈로 가득하다. 조선시대 윤두서(1668∼1715)의 ‘자화상’을 보고 채색화를 공부한 윤석남은 여성 독립운동가 63명의 초상을 그렸다. 윤석남과 타링 파디의 작품은 시대적 배경도 국가도 다르지만,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에 항의하는 모습을 뜨겁게 그린다.

해방을 꿈꾸면서도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를 대안으로 제시한 2024 부산 비엔날레 ‘어둠에서 보기’가 17일 개막했다. 전시는 18세기 마다가스카르 연안을 오간 해적들 사이에서 형성됐던 자치 사회와 불교의 도량(度量)에서 영감을 얻었다. 정해진 틀을 벗어나 상황에 따라 누구나 리더가 될 수 있었던 해적 사회의 유연함, 공동체를 존중하는 불교의 포용성을 중심 주제로 32개국 62작가(팀)의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는 부산현대미술관, 부산근현대역사관, 한성1918, 초량재 등 4개 장소에서 펼쳐지는데, 부산현대미술관이 가장 밀도가 높다. 송천 스님의 불화인 ‘관음과 마리아―진리는 내 곁을 떠난 적이 없다’와 난파선을 연상케 하는 정유진의 ‘망망대해로’가 입구에 대규모로 설치돼 각각 불교와 해적이라는 전시 주제를 대표한다.

윤석남과 타링 파디의 작품이 마주 보듯, 서로 비교해 볼 작품이 함께 배치된 공간이 여럿 등장한다. 한국 근현대사를 다룬 신학철과 불교 및 서구 문화가 혼재된 캄보디아의 일상을 그린 티안리 추의 회화가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일본 작가 요코 데라우치와 태국 작가 프랏차야 핀통의 설치 작품도 그렇다.

한국 작가는 물론이고 유럽과 미국의 비엔날레에서 보기 힘들었던 동남아시아 작가들이 대거 조명된 것도 특징이다. 정치, 사회 문제를 적극 끌어들여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 작품이 많다. 냉전 이후 제3세계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국제회의인 ‘반둥 회의’를 주제로 한 전시를 독일에서 선보인 바 있는 베라 메이, 필리프 피로트 두 예술 감독은 이번 전시에서도 식민주의와 냉전 체제의 잔재를 벗어날 대안을 모색해 간다. 두 감독은 “‘빛’을 중심으로 사고했던 유럽 계몽주의를 벗어나 깊은 어둠 속에서 포용적인 대안을 찾고자 했다”고 밝혔다. 10월 20일까지.


김민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