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對)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를 담당하는 상무부 고위 관료가 한국 기업들이 생산하는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중국이 아닌 미국과 동맹국에 공급해야 한다고 밝혔다. HBM은 인공지능(AI) 반도체 구동을 지원하는 핵심 제품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주관으로 10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경제안보 콘퍼런스’에 참석한 앨런 에스테베스 상무부 산업안보차관은 “미국과 동맹의 안보를 위협하는 첨단 기술을 (중국 등이) 확보하지 못하도록 하려면 동맹국이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세계에서 HBM을 만드는 기업이 3곳인데 그중 2곳(삼성전자, SK하이닉스)이 한국 기업”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역량을 우리 동맹을 위해 개발하고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게 중요하다”며 “중국의 관련 역량이 커지지 않도록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앞서 5일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군사 용도로 쓰일 수 있는 양자컴퓨터, 첨단 반도체 제조에 쓰이는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금속 부품 생산에 쓰이는 3차원(3D) 프린팅 기술 등 24개 품목의 수출 규제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특히 일본, 독일 등에는 미 연방정부의 허가 없이도 미국의 관련 기술을 수출할 수 있도록 허가하면서 한국에는 “신청을 해야 허가한다”는 ‘조건부 허가’를 부여했다. 한국의 대중국 수출 규제 강도가 미국이 원하는 수준에 미흡하다는 점을 에둘러 표현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