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강제 동원된 한국인 등 183명이 목숨을 잃은 일본 야마구치현 해저 탄광 조세이(長生) 탄광에서 이달 말부터 유골 발굴 작업이 시작된다. 1942년 사고 발생 이후 82년 만이다.
일본 시민단체 ‘조세이 탄광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은 25일 “야마구치현 우베시 조세이 탄광 갱구 앞에서 26일 추도식을 갖고 발굴 시작을 알리는 집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한일 양국 희생자 유가족과 불교계 인사, 시민단체 등이 참석한다.
조세이 탄광은 야마구치현 우베시에 있는 해저 탄광으로 일제강점기인 1920년 문을 열었다. 태평양전쟁으로 무리한 채탄 작업이 계속되던 1942년 2월 3일, 해저 갱도에 물이 새면서 수몰 사고가 발생했다. 조선인 136명과 일본인 47명 등 183명이 목숨을 잃은 참사였다.
탄광은 사고 뒤 시신도 수습되지 않은 채 폐쇄됐다. 지금까지 희생자 수습 및 사고를 둘러싼 진상 규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현장은 바다 위로 보이는 환기 배수용 콘크리트 구조물이 당시 상황을 짐작하게 할 뿐이다. 2004년 한일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 전 총리에게 진상 조사 및 유골 발굴을 요청했지만, 일본 측은 “매몰 위치, 심도 등이 불분명해 조사는 어렵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이번 발굴은 시민단체 측이 크라우드 펀딩으로 모금한 돈으로 이뤄진다. 9월 바닷가에서 지상 작업을 시작해 지하 4m에서 가로 2.2m, 세로 1.6m 크기의 해저터널 입구를 발견했다. 이달 29일부터는 잠수부가 들어가 갱내 상황을 확인하고 본격적인 유골 발굴에 나선다.
주호영 국회부의장은 집회에 보낸 추도사에서 “희생자 유골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며 “진실을 밝혀 희생자 유해와 영혼이 고국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시민단체 측은 “여기까지 온 만큼 한 조각이라도 유골을 찾아 유족에게 돌려주고 싶다”며 “유골 존재가 밝혀지면 국가(일본)가 책임감 있게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