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SK 현대차 LG 등 주요 기업 16개사 사장단이 “한국 경제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며 상법 개정 논의를 중단하고 경제 위기 극복에 힘을 모아 달라는 취지의 이례적인 ‘긴급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재집권에 따른 불확실성이 더해진 상황에서 입법 규제를 멈춰 달라며 집단 행동에 나선 것이다. 한국경제인협회 등 경제단체를 중심으로 주요 기업이 공동 성명을 발표한 것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유행으로 인한 내수 침체가 이어지던 2015년 7월 이후 9년 만이다.
21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 모인 사장단은 특히 이사의 충실 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더불어민주당의 상법 개정안에 대해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소송 남발과 해외 투기자본의 공격으로 이사회의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워지고, 신성장동력 발굴에 애로를 겪게 할 것”이라며 논의 중단을 요구했다.
이날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주주 간 이해관계가 다르다며 “‘(모든) 주주’를 충실의무 대상으로 넣을 경우 많은 혼란이 있을 수 있다”면서 야당의 상법 개정안에 대해 반대 의사를 밝혔다.
16개사 사장단은 “우리 경제 성장동력이 약화되면서 2% 성장률 달성도 버거워졌다”며 “많은 투자자들은 기업의 성장성이 둔화되자 국내보다 미국 증시에 투자하는 것을 선호하고, 기업부채는 장기 불황으로 크게 증가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또 “내수는 가계부채 등의 문제로 구조적 침체를 벗어나기 힘들고, 그나마 버텨주던 수출마저 보호무역주의 확산에 따른 글로벌 환경 악화로 앞으로를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며 “보호무역주의 분위기 속에서 각국이 첨단 산업 지원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지원을 서둘러 달라”고 요청했다.
주요 대기업 사장단이 모여 이례적 성명을 발표한 것은 트럼프발 불확실성 속에 상법 개정안까지 국회를 통과하면 감당하기 힘들다는 우려가 팽배하기 때문이다. 이날 성명 발표에는 박승희 삼성전자 대외협력(CR) 담당 사장, 이형희 SK수펙스추구협의회 커뮤니케이션위원장, 김동욱 현대차 전략기획실 부사장, 차동석 LG화학 최고재무책임자(CFO) 부사장 등 16개사 사장단과 김창범 한경협 상근부회장이 참석했다.
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