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밴 생강(Ginger) 향은 지우기 힘들다.’
시티팝의 신흥강자로 불리는 미국 싱어송라이터 ‘진저루트(Ginger Root·사진)’. 팬들은 진저루트의 곡에 빠져든 자신들을 이렇게 표현한다.
중국계 미국인인 진저루트의 본명은 캐머런 루(28). 2016년 진저루트란 이름으로 음악을 만들며 현재까지 7장의 앨범과 3장의 EP, 19개의 싱글을 발매했다. 진저루트가 국내에서 인기를 끈 건 약 2년 전부터다. 국내에서 특별히 홍보를 하지 않았지만 팬들이 그의 곡을 넣어 만든 유튜브 플레이리스트와 가사를 번역한 영상이 입소문을 타며 단독 공연까지 열 만큼 인기를 얻고 있다.
서울 마포구 왓챠홀에서 20일 국내 첫 공연을 앞둔 진저루트를 만났다. 그는 “국경을 넘어 사랑받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스탠딩석으로 이뤄진 왓챠홀은 이날 600여 명의 관객으로 꽉 찼다.
진저루트의 음악이 이목을 끈 건 국내 레트로 열풍과 관련 있다. ‘Loretta’(2021년) ‘Weather’(2021년) 등 몽환적이면서도 감각적인 멜로디가 특징인 그의 음악은 낭만적 음률을 가진 1970, 80년대 일본 시티팝과 많이 닮았다. 그는 “고등학교 때 처음 1970, 80년대 일본 음악을 접하고 팬이 됐다”며 “신선하면서도 어딘가 공감대가 있는 점이 매력적이었다”고 했다.
공감대는 그의 뿌리와 맞닿아 있다. 이민 3세대인 그는 “미국에서는 한국, 중국, 일본 태생 모두 아시아계 미국인으로 불린다. 비슷한 시대의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노래에도 관심이 가는 이유”라며 “제 음악이 표면적으로는 일본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지만 그 근저에는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의 고민이 녹아 있다”고 했다.
그의 개성은 음악에서만 드러나는 게 아니다. 지난해 발표한 ‘Loneliness’ 뮤직비디오는 가상의 일본 가수 기미코가 도망가자 진저루트가 그를 대신해 활동한다는 독특한 이야기로 눈길을 끌었다. 영화학도이기도 한 그는 영상미가 돋보이는 1970, 80년대 감성의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날 공연에서 그는 노래하고 연주하며 춤추는 중간중간 개그를 하고, 카메라를 응시하며 이야기해 한 편의 재치 있는 연극을 보는 것 같았다. 그는 “음악, 뮤직비디오, 공연 등 제 모든 활동이 밝고 경쾌한 에너지를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진저루트는 한국 공연을 시작으로 3월 홍콩과 태국에서 공연을 이어갈 계획이다.
김태언기자 b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