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월요일(10월 30일), 나주 역사공원에서는 일본인들이 기금을 모아 만들어진 “동학농민군 희생자를 기리는 사죄비” 제막식이 있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일본인 대표가 사죄문을 읽었다. 그는 이노우에 가쓰오 홋카이도대 명예교수였다.
동학농민군에 대한 그의 관심은 1995년 홋카이도대 문학부 인류학 교실에서 동학군의 두개골이 발견된 것이 계기였다. 두개골에는 붓글씨로 “한국 동학당 수괴의 수급(首級)”이라고 쓰여 있었다. 전라남도 진도의 어느 산에 버려진 것을 “채집”해 가져온 것이었다. 죽인 것도 모자라 두개골을 채집해 연구에 사용하다니, 모욕도 그런 모욕이 없었다. 제국주의자들은 늘 그랬다. 총과 칼로 짓밟고 학문으로도 짓밟으며 애도의 권리마저 박탈했다.
그는 그 사건을 계기로 동학농민군 자료를 찾아 나섰다. 그러면서 일본군이 1895년 1월 5일부터 2월 8일까지 35일간 나주의 호남초토영에 머물며 자행한 학살의 실상을 일본군 병사의 ‘종군일지’를 통해 밝혀냈다. 라이플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에게 화승총과 죽창만 가진 동학농민군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결과는 대학살이었다. 사죄비 건립을 제안했던 나카쓰카 아키라 나라여대 명예교수는 동학농민군 학살을 “일본군이 저지른 최초의 제노사이드”라고 했다.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초토영 자리에 세워진 나주초등학교에서는 무슨 행사를 할 때마다 비가 내린다는 얘기가 있을까.
일본인들이 사죄하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그들의 정부가 역사를 부정하고 왜곡하는 상황에서 자신들에게 전혀 이로울 것 같지 않은데 어째서 그들은 한국인들에게 사죄했을까. 제막식 하루 전 세상을 떠난 나카쓰카 교수의 말대로 “역사에서 생긴 문제를 해결하고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역사를 사실에 기초해서 아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안하기 때문이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저만큼밖에 망가지지 않은 것은 그런 개인들이 있어서일지 모른다. 그렇게 사죄하고, 또 우리는 용서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