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 닷 컴[양영훈의 테마 여행]

테마 1·양양 송이마을

선한 눈…착한 마음…‘金’따는 산사람들

추 석도 지나지 않은 때인지라 아직은 가을을 느끼기엔 이른 철이다. 그러나 강원도 홍천 땅을 지나고 태백산맥을 가로지르는 임도를 따라 양양 지방의 깊은 산골인 현북 면 면옥치 마을에 들어서자 가을빛이 제법 뚜렷해 보였다. 높은 산들로 둘러싸인 골 짜기의 짙푸른 솔숲 사이로 얼핏얼핏 드러나는 들녘은 황금빛으로 현란하였고, "산허 리는 왼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하였다. 골짜기의 펀펀한 곳마다 자리잡은 논밭에는 잘 여문 곡식들이 무거운 듯 고개를 떨구고 있었지만 추수 하는 농부의 모습은 좀체로 눈에 띄지 않았다. '가을 중 싸돌아다니듯이' 마을 이곳저 곳을 쏘다니다가 만난 아낙에게 까닭을 물으니 "사나흘 전부터 송이를 따기 시작해서 그래요. 송이 철에는 다른 일은 신경 쓸 겨를이 없어요"라고 대답하였다. 이 두메산골 의 가을은 송이 따는 일로 시작된다고 했다.

송이 팔아 문전옥답황소 장만한 적도

▲적송에 둘러싸인 송이밭. 일사량이 육
칠십%쯤 되는 적송밭에서 잘 자란다고 한다.

양양군은 명주군, 울진군과 함께 우리나라 최대의 송이 산지로 꼽힌다. 그중에서도 특히 양양 지방은 송이값이 헐했던 옛날부터 송이를 따서 판 돈으로 문전옥답도 사들 이고 황소도 장만했다고 할 만큼 질 좋은 송이가 많이 나기로 이름 난 곳이다. 송이 는 20년생부터 90년생까지의 적송(赤松)밭에서 많이 나는데, 양양군에서는 현북면의 명지리, 원일전리, 말곡리, 어성전리, 면옥치리와 서면 일대의 산에서 송이가 많이 난 다. 이 지방에서 지난 94년에 생산된 송이의 양은 34톤, 값으로 치면 자그마치 44억원 이 넘는다. 양양 임업 협동 조합을 거쳐간 송이의 양이 그렇게 된다는 말이니 중간 상인들을 거쳐간 것까지 보태면 그 양은 훨씬 더 많아진다. 이쯤 되면 이곳 사람들이 송이에 기대는 바가 얼마나 큰지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겠다. 송이에 기대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송이 철 한철만 바라보고 사는 이들도 있다. 논은 부녀자들에게나 사람 을 사서 맡기고 송이 철 내내 산막을 짓고 송이밭에 들어가 산다. 한 달 남짓 송이를 따서 올리는 수입이 한해 뼈빠지게 지은 농사보다 훨씬 낫기 때문이다.

면옥치 마을에서 만난 송이꾼 김남원 씨(36세)는 "산에 스프링쿨러 시설까지 갖추 고 송이 농사를 하는 사람도 있어요. 송이라는 것이 비가 적당히 와야만 잘 나오거든 요. 허나 그것도 한해 이삼천만원 버는 개인 송이밭이라야 그렇게 하지 아무나 못해 요"라고 했다.

어성전 마을에 사는 김연석 씨(61세)의 송이밭은 자신의 집 뒤에 있는 야산인데, 자 기 소유의 산 만이천평쯤에서 해마다 일이천만원의 수입을 올린다고 한다. 어느 해에 는 송이 30kg을 하루 만에 딴 적도 있었다고 했다. 그쯤 되면 송이밭이 아니라 '돈밭' 이라 부를 만하다.

그러나 대부분 국유림에서 송이를 따는 면옥치 사람들 처지에서는 딴 세상 사람들 의 이야기로 들릴 따름이다. 그 국유림마저도 송이를 딸 수 있는 면적이 넓지 않기 때문에 전체 아홉 가구를 다섯 가구와 네 가구로 나누어 한해 건너서 송이밭에 들어 간다고 한다. 송이밭은 큰 것과 작은 것 해서 두 구역으로 나뉘는데 큰 송이밭에는 세 집이, 그리고 작은 송이밭은 두 집이 공동으로 들어간다. 앞서의 김남원씨는 마을 이장인 이종해 씨(44세), 서동준 씨(25세)와 함께 골짜기 윗쪽에 있는 큰 송이밭에서 송이를 딸 수 있게 되었다. 연장자인 이씨더러 송이밭을 취재하고 싶다는 뜻을 전하 니 사람 좋아 보이는 그이는 흔쾌히 승락하였다.

“‘딸한테도 안 알려준다’는데 동행 행운 ”

▲조심스럽게 송이를 따고 있는 모습.

양양 지방에는 "송이밭은 딸한테도 일러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딸은 커서 시집 가면 남의 식구가 된다고 여겼기 때문인데, 송이철인 9월 한달동안은 시집간 딸의 친 정 나들이가 잦아졌다고 한다. 딸도 처녀 적에 보아두었던 독송이밭(남몰래 보아둔 송이밭)을 친정 식구들에게 알려주지 않고 시집갔다가 송이 철이 되면 몰래 송이를 따가려고 온다는 것이다. '구역'이 엄격한 요즈음과는 달리 아무나 산에 들어가 송이 를 딸 수 있었던 시절의 이야기이긴 하나 요즘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했다. 오히려 그 시절의 은밀했던 경계심은 오늘날에 더욱 노골적인 것으로 변했다. 송이가 나기 시작할 무렵이면 산등성이나 산자락에는 송이밭의 경계(境界)를 알리는 붉은 비 닐끈이 여기저기 둘리어지고 한창 송이가 많이 올라올 때에는 송이밭마다 군데군데 산막이 설치되어 있어 밤낮으로 경계(警戒)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이러저러한 사정을 익히 보고 들어서 알고 있었던 터라 송이밭 동행을 흔쾌히 승락한 이씨의 배려는 매 우 고마운 일이었다.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이른 새벽에 송이꾼 셋은 송이 망태와 끝이 뾰족하고 긴 막 대기를 하나씩 챙겨들고 차에 올라 길을 나섰다. 가파르게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를 굽이굽이 돌아서 한참 만에야 다다른 편편한 산중턱의 길가에 차를 세워두고 솔밭으 로 들어섰다. 앞서 가던 이씨가 자기 발자국만 따라서 와야 된다며 주의를 주었다. 송 이는 다른 버섯들과는 달리 은밀하게 숨어서 나기 때문에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송이 옆을 모르고 지나치기 일쑤이고 더러는 무심코 밟아 버리는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했 다. 송이꾼들은 잰걸음을 놓다가도 발에 슬쩍 닿는 감촉만으로도 대번에 송이인 줄을 알아 차린다. 다른 버섯들은 발밑에서 "푸석" 하고 꺼지지만 송이는 밟으면 "쿵쿵거리 기" 때문이다.

▲ 양양 임업 협동 조합의 송이
공판장에서 등급별로 송이를
분류하고 있다.

아무리 눈을 씻고 둘러봐도 내눈에는 송이 비슷한 것조차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도 이씨와 김씨는 그야말로 귀신처럼 송이를 찾아내곤 하였다. 김씨의 말로는 "송이 는 부엽토가 두텁거나 땅이 진 곳에는 없고 땅이 단단하고 위쪽이 푸슬푸슬한 데서" 잘 자라며 "땅속에 일정한 방향으로 하얀 실처럼 송이 균사가 뻗어 있어서 송이 날 자리를 미리 알 수 있으며 전에 났던 자리에서는 다시 송이가 돋아난다"고 했다. 송 이를 발견하면 열에 예닐곱개만 따고 나머지는 하루이틀이나 사나흘동안 "키웠다가" 딴다. 어린 송이는 상품의 가치가 떨어질 뿐더러 무게도 많이 나가지 않기 때문이라 고 했다.

산허리에 위치한 송이밭을 두어 시간쯤 훑고 다닌 이씨 일행은 다시 차에 올라 임 도를 타고 산마루에 위치한 송이밭으로 옮겨 갔다. 걸어다녀야 했던 시절에는 송이밭 을 오르내리는 데에만 한나절이 걸렸다고 했다. 이씨는 "차를 타고 다니니까 시간도 절약되고 편해서 좋지만 안 좋은 점도 있어요. 우리만 편해진 게 아니라 송이를 훔쳐 가는 사람들도 편해지긴 마찬가지니까요."라고도 했다. 이 지방에는 송이값이 금값 된 뒤로 송이 도둑에 얽힌 이야기가 많이 있다. 하룻밤 송이밭을 비웠다가 송이를 싹 쓸 린 이야기이며 오전에 캔 송이를 산막 옆에 놓고 잠깐 눈을 붙였다가 깨어보니 송이 가 송두리채 온데간데 없었다는 말도 있다. 어느 해에는 백주 대낮에 젊은 패거리들 이 낫을 들고 송이밭을 습격한 적도 있었다고 했다.

이종해 씨를 포함한 세 사람은 그 한나절동안 8kg쯤의 송이를 땄다. 그 날의 송이 수매가가 1kg을 기준으로 하여 1등품이 6만7천8백원, 2등품이 6만6천7백원이었으니 죄다 2등품이었다고 쳐도 53만3천6백원어치는 된다는 말이다. 그렇게 벌어들인 송이 값은 셋이서 똑같이 나눈다.

수출 송이값 들쭉날쭉…희비 엇갈려

▲ 일등품으로 분류된 양양 송이

송이값은 등락이 매우 심해서 당최 종잡을 수가 없다. 특히 일본 시장에 의존하는 바가 크기 때문에 일본에서의 수요량과 일본행 항공편의 결항 여부에 따라서 천정부 지로 치솟기도 하고 폭락하기도 한다. 94년 9월의 경우를 보자면, 15일에는 1등품짜리 1kg의 수매가가 39만6천원이었는데 23일에는 12만3백4십원까지 곤두박질하였다. 송이 값이 여드레 만에 삼분의 일로 떨어진 것이다. 그래도 그 해에는 송이값이 10만원 아 래로 떨어진 적은 없었다. 그러나 그러께에는, 수매 첫날인 9월 11일에는 8만5천5백원 이었다가 12일에는 11만5천원, 그리고 15일에는 6만7천8백원까지 떨어졌다. 북한산 송 이가 대량으로 들어온 데다가 일본 시장에서의 수요량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송 이는 수매되고 난 뒤에야 수매가가 결정되기 때문에 같은 사람이 같은 양의 송이를 내놓았더라도 때에 따라서는 금값을 받기도 하고 헐값을 받기도 한다.

어쨌거나 송이를 따는 양양 사람들은, 막 딴 송이의 갓을 떼어내고 소금을 살짝 뿌 린 뒤에 상수리잎에 싸서 구워 먹는 맛이 일품임을 알고는 있지만 정작 그렇게 하지 는 못한다. 갓을 피우고 너덜너덜해진 퍼드래기라 하더라도 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 이다.

오대산 닮아 눈빛 어진 이들의 행복

▲ 어성전리 게잔동 마을에 남아 있는 굴피집

손바닥만한 송이밭도 하나 없거나 송이를 딸 수 있는 차례가 아니어서 송이밭에 가 지 못하는 사람들은 능이버섯이나 영지, 고무버섯, 밤버섯 등 이맘때쯤에 나는 버섯을 따기 위해 저마다 산을 바삐 오르내린다. 자연으로부터 입는 혜택의 많고 적음은 있 지만 거기에 의탁하는 이곳 사람들의 마음은 한결 같아 보였다.

면옥치 마을과 이웃한 어성전 마을도 송이가 많이 나기로 이름난 곳이다. 면옥치 마을보다 낮은 곳에 위치한 어성전, 원일전, 명지리 등의 하리(下理;아래쪽 마을)에서 본격적으로 송이가 쏟아져 나오는 9월 중순쯤 되면 이 산골 마을마다 "고양이 손발이 라도 빌려야" 할 만큼 일손이 바빠진다.

▲ 면옥치 마을의 비탈진 산허리에
"소금을 뿌린 듯"이 피어난 메밀꽃

어성전 마을 사람들은 송이말고도 장뇌를 재배하여 높은 소득을 올린다고 한다. 재 배 산삼인 장뇌는 씨를 뿌리고 나서 거둘 때까지의 기간이 인삼에 견주어 훨씬 오래 걸리기 때문에 "명 짧은 사람은 장뇌 농사 못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그러나 재배 기간이 긴 만큼 약효도 뛰어나다고 해서 값도 매우 비싼 편이다. 장뇌 재배를 처음으 로 시작한 이는 이 마을에 사는 양승철 씨(59세)였다. 산삼 캐는 심메마니이기도 한 그이는 30여년 전쯤에 이웃집 영감님으로부터 산삼씨를 얻어서 시작했다고 한다. 그 뒤로 양씨는 자신의 장뇌에서 얻은 씨를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장뇌 재배를 권장 했다. 산삼은 지척을 두고도 땅을 가리기 때문에 재배하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지만 일단 땅만 맞으면 씨를 뿌려 두고 자라기만 기다리면 된다. 약용으로 쓰이려면 성인 용은 적어도 십사오년생은 되어야 하지만 어린이용으로는 칠팔년생으로도 족하다고 한다.

크고 듬직한 오대산 산세를 닮아서인지 이곳에서는 만나는 사람마다 따뜻한 눈빛과 후박한 인정을 내비쳤다. 어성전 마을의 양씨는 저녁이나 들고 가라며 떠나는 길손의 손목을 한사코 잡아 끌었다. 그리고 면옥치 마을에서 만난 초로의 아주머니는 위장병 에 좋은 거라며 그이가 한나절동안 비탈진 산속을 뒤져 애써 따온 고무버섯을 한 움 큼 쥐어주기도 하였다. 깊은 골짜기엔 어느덧 땅거미가 내려앉고 갈바람의 섬뜩한 한 기(寒氣)가 옷섶을 파고들지만 마음만은 왠지 훈훈하다. 아마도 그곳 사람들이 보여준 인정의 여운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일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