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 닷 컴[양영훈의 테마 여행]

테마 12·부안 변산반도의 내소사

전나무숲 지나 피안의 세계가…

운수(雲水)처럼 산하를 떠도는 게 일인지라 가까운 지인들로부터 『어디가 가장 좋더냐』는 물음을 곧잘 받지만, 뜬구름 잡는 듯해서 선뜻 답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절을 하나 꼽으라면 주저없이 부안 변산반도의 내소사(來蘇寺)를 꼽는다. 고풍스럽고 명징한 절집의 분위기도 인상적이거니와 주변 풍광 또한 빼어나게 아름답기 때문이다.

능가산의 아름다운 암봉들에 둘러싸인 내소사

내소사는 백제 무왕34년(633)에 창건된 고찰로 본래 이름은 「다시 태어나기 위해 찾아오는 곳」이라는 뜻의 소래사(蘇來寺)였다고 한다. 나당연합 당시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이곳에 들러 시주한 뒤로 내소사가 됐다는 설이 있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다. 더욱이 조선 성종 때 간행된 「동국여지승람」 에 소래사로 기록된 것으로 보면 내소사로 개명된 된 것은 조선 중기 이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내소사 입구의 전나무 숲길

유서깊은 사찰을 찾아가는 길에는 으레 초입의 울창한 숲길을 거쳐 경내로 들어서게 마련이다. 그러나 내소사의 전나무 숲길만큼 운치있는 곳은 그리 흔치 않다. 내소사를 찾았던 이들에게 가장 인상적인 것도 바로 이 전나무 숲길이다. 일주문을 들어서자마자 마주치는 전나무숲의 위용에 탄성이 절로 터져나온다. 하늘을 찌를 듯 뻗어올라간 수백 그루의 전나무들로 인해 마치 거대한 터널 속에 들어선 듯하다. 이 숲길을 따라 걷다보면 숨을 들이쉴 적마다 전나무의 맑은 향기가 온몸 깊숙이 파고든다. 어느덧 속진(俗塵)에 찌든 심신은 가뿐해지고 불도량(佛道場)을 향하는 발걸음도 한결 가볍다.
600m에 이르는 전나무 숲길을 빠져나오면 능가산의 기골장대한 암봉들이 시야에 가득찬다. 천왕문 위로 우뚝하게 솟아오른 암봉들이 주왕산의 대전사 뒤편에 솟은 기암(旗巖)처럼 우람하다. 천 왕문을 지나면 내소사 경내에 들어서지만 가람의 전체 모습을 한눈에 볼 수는 없다. 천왕문과 대웅보전 사이의 경사면에 서너 단의 돌축대를 쌓고, 축대마다 각종 화초와 수목을 심어 시야를 막았기 때문. 언뜻 보면 갑갑해보이는 조경이다. 그러나 오히려 넓은 절터가 휑하게 보이는 것을 막아줌으로써 아늑함을 느끼게 한다. 축대를 오를 때마다 느티나무 단풍나무 전나무 등에 가려졌던 당우(堂宇)들이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내는데, 마치 베일 속에 가려진 마술상자를 보는 듯한 재미가 있다.
내소사도 여느 절과 마찬가지로 근래에 세워진 건물이 많고 지금도 중창불사가 한창이다. 그런데도 전혀 번잡하거나 요란하지가 않다. 수백년을 이어온 전통과 원형을 지키려는 성심(誠心)이 절 구석구석에 배어있을 뿐더러 근래에 새로 지어진 건물조차 옛 건물과 분간되지 않을 정도로 소탈하고 고풍스럽다.
이 절의 가람 배치는 전체적으로「ㅁ」자 형태다. 본전(本殿)인 대웅보전이 높은 축대 위에 올라앉아 있고 그 맞은편에는 2층 누각인 봉래루가, 그리고 좌우에는 요사채인 설선당과 무설당이 서로 처마끝을 맞댄 채 자리잡았다. 그 중 가장 돋보이는 것은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건축으로 꼽히는 대웅보전(보물 제291호)이다.
조선 인조11년(1633)에 건립된 대웅보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인데, 못 하나 쓰지 않고 순전히 나무토막만 끼워 맞춰 세웠다고 한다. 그 공력과 정성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조선 중기 이후에 성행한 다포계 건물답게 공포(拱包·지붕의 무게를 떠받치려고 기둥머리에 짜 맞춰 댄 나무쪽)가 매우 복잡하게 만들어진데다, 기둥 위에는 쇠서받침(전각의 기둥 위에 덧붙이는 소의 혀 모양으로 된 받침)들이 겹겹이 중첩돼 있어 매우 장식적이다. 그러면서도 단청을 하지 않고 목재의 결이 그대로 드러나게 했기 때문에 화려함보다는 단아함이 두드러져 보인다.
반면에 갖가지 그림과 단청으로 치장된 법당 내부의 벽체와 천장은 화사하기 그지없다. 특히 천장에는 게가 억센 집게발로 물고기를 쥐고 있는 그림과 용이 물고기를 입에 물고 있는 형상이 조각된 보머리(기둥을 가로지르는 들보의 끝부분)가 눈길을 끈다. 이는 약육강식의 자연섭리를 표현한 것인 듯하다. 거기에 감춰진 뜻을 알 순 없지만, 부처의 성전 안에 약육강식의 섭리가 표현된 점이 매우 이채롭다.

그러나 대웅보전에서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것은 정면 여덟짝의 문살에 빼곡이 조각된 꽃무늬다. 문짝마다 소담스런 연꽃과 국화꽃이 가득 새겨져 있어 늘 화사한 꽃밭을 이뤘다. 애초에는 단청이 화려하게 채색됐지만 오랜 풍상으로 색이 바래 지금은 나무의 소박한 질감과 색채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화려하면서도 번잡하지 않은 내소사의 독특한 분위기가 이 문살에서도 확연히 느껴진다. 내소사 보종각에 걸려있는 고려 동종(보물 제277호)은 원래 고려 고종9년(1222)에 내변산 청림사의 종으로 주조된 것이다. 청림사가 폐사된 뒤에 땅속에 묻혀있던 것을 발굴하여 1856년에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웅장함과 화려한 멋은 덜하지만 원형이 잘 보존됐고 종신(鐘身)에 삼존상 (三尊像) 이 섬세하게 양각돼 있어 고려 후기의 대표적인 동종으로 평가된다.
산과 바다가 두루 좋은 변산반도는 「답사 여행의 보고(寶庫)」라 불릴 정도로 특색있는 볼거리가 많다. 고려청자의 가마터였던 부안군 진서면 진서리 도요지(사적 제70호)와 보안면 유천리도요지 (사적 제69호) 와 보안면 우동리의 분청사기 도요지, 반계 유형원 유허지, 백제의 천년고찰인 개암사와 백제부흥운동의 근거지였다는 울금산성, 하서면 구암리의 고인돌군(사적 제103호), 변산면 격포리의 수성당(水聖堂) 등은 변산반도의 장구한 역사와 융성했던 문화를 말해주는 유적들이다.
또한 격포리 수성당 부근의 후박나무군락(천연기념물 제123호), 도청리 국도변의 호랑가시나무군락 (천연기념물 제122호), 내변산 중계리의 꽝꽝나무군락 (천연기념물 제124호) 과 미선나무군락 등은 변산반도의 풍요로운 생태와 아름다운 자연을 대표하는 식생(植生)이다.

§ 참조하세요
느티나무
내소사에는 해묵은 느티나무가 두그루 있다. 입구의 일주문 밖에 있는 것은 할머니당산, 경내의 두번째 축대 위에 있는 수령 950년의 느티나무는 할아버지당산이라고 한다. 임진왜란 이후 불교가 중흥하면서 칠성각 산신각 삼성각 등 민간의 토착신앙이 절 안으로 들어오게 되지만 내소사의 경우처럼 당산나무까지 절 안으로 끌어들여진 예는 달리 찾기 어렵다. 몇해 전까지도 해마다 정월 보름이 되면 절 밖의 할머니당산나무 앞에 제물을 차려놓고 내소사 스님들이 독경하며 마을 사람들과 함께 당산제를 지냈다고 한다.
우동리
실학 선구자였던 반계 유형원 (1622∼73) 이 오랫동안 살면서 후학을 양성하고 「반계수록」 을 저술한 곳이라 반계마을로도 불리운다. 마을 안에 있었다던 반계의 집터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지만 마을 뒤편의 산기슭에는 그가 공부하며 「반계수록」를 썼다는 학당과 생전에 사용했던 우물이 여태껏 남아있다. 그리고 이 마을의 동구에는 솟대가 세워진 당산나무가 있는데, 지금도 홀수 해의 정월 대보름날이면 주민들의 단합과 풍년을 기원하는 당산제가 열린다. 예전보다 동제의 규모와 신명은 많이 줄었지만 줄다리기 놀이의 원형과 전라도 지방의 전통적인 동제문화 (洞祭文化)가 잘 보존돼 있다.

서해 일몰 보며 먹는
백합요리 맛 일품

예로부터 조선팔경과 호남 5대명산 중의 하나로 꼽혀온 내변산을 둘러보지 않고서는 변산반도를 제대로 구경했다고 하기 어렵다. 고인돌군이 있는 하선면 구암리에서 736번 지방도로로 접어들면 내변산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직소폭포 초입의 백천내까지는 삼십리쯤 된다. 백천내 계곡을 중심으로 사면이 산자락에 둘러싸인 내변산은 어느 명산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경관이 수려하다. 직소폭포 분옥담 벼락폭포 등의 폭포와 낙조대 관음봉 망포대 같은 기암준봉들이 내변산의 대표적인 절승이다. 그 중에서도 낙조대에서 바라본 서해의 일몰과 깎아지른 절벽 위에서 시원하게 쏟아져내리는 직소폭포는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장관을 연출한다. 내변산의 공원 매표소에서 직소폭포까지 오가는 데에는 약 3시간이 걸린다.
부안읍내 동중리에 위치한 계화회관 (0683-84-3075)은 백합죽으로 소문난 집이다. 이 백합죽은 계 화도 특산물인 백합조개와 계화간척지 쌀로 만든 것인데, 매끄러우면서도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이 집에서는 백합회 백합탕 자연굴회 해물탕 등의 다양한 해물요리도 맛볼 수 있다. 내소사 입구에는 제대로 된 숙박시설이 없지만 채석강과 변산해수욕장 주변에는 채석장 (0683-83-8040) 산해장 (0683-82-8040) 등 최근에 새로 들어선 숙박업소가 많다. 모항마을 부근의 전망좋은 언덕에 자리잡은 모항일신 관광농원 (0683-84-8867) 도 하룻밤쯤 묵어가기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