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대한적십자사 광복절 동행 프로젝트 1

고려인,
피란민으로 살아간다

독립운동가의 후손,
고국에선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스크롤해서고려인 동포들의
이야기 들어보기

돌아오다
: 폭격을 뚫고 도착한 고국

“딸과 손자가 겁에 질려서 지하실에 숨었다네요.
집 근처에서 폭발이 일어나고요.”

2022년 2월, 국내 고려인 사회는 혼란에 빠집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소식 때문입니다. 당시 국내에 머물던 우크라이나 국적 고려인들은 2418명.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주로 식당이나 공사 현장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이분들은 살고 있던 곳이 전쟁이 휩쓸렸다는 소식을 듣고 발을 동동 구릅니다.

그러던 중에 전쟁터로 변한 헤르손에 살던 고려인 후손 남아니따 양(당시 10살) 소식이 들려옵니다. 현지 대피소와 루마니아를 거쳐 헝가리로 탈출하는 과정에서 어머니와 생이별했죠.

고려인 할머니와 아버지는 2018년부터 한국에 일하기 위해 건너와 있었습니다. 손녀를 한국으로 데려올 방법이 없겠느냐는 가족 하소연에 아니따를 데려올 항공 표를 구하기 위해 광주 고려인마을을 중심으로 모금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지역 모금을 통해 가까스로 비행기 표를 구해 아니따 양에게 전해지고요.

인천공항에 나가 있던 할머니 고려인 3세 남루이자 씨(65)는 손녀를 보는 순간 눈물을 흘리면서 손녀를 안았습니다. 그렇게 아빠와 할머니는 딸을 보면서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아니따 양의 피란 소식은 당시 한국에 머물던 고려인 커뮤니티에서 특히 큰 화제가 됐어요. 그 소식을 들은 우크라이나 국적 고려인들은 동포들의 초기 정착을 지원해온 광주고려인마을에 하소연해옵니다.

전쟁 화마에 휩쓸린 가족들을 고국으로 데려올 수 있느냐는 거였죠. 언젠가는 고국에 돌아오고 싶었던 가족들이라면서요.

*고려인이란?

 옛 소련지역에 살던 우리 동포. 조선 후기부터 경작지를 찾아 두만강을 넘어 연해주을 기반으로 살았고, 항일 운동기 독립운동을 물심양면으로 도왔습니다. 1937년 강제 이주로 인해 중앙아시아 곳곳에 자리잡게 됩니다.

신조야 광주고려인마을 대표(68·우즈베크 고려인 3세)는 한국으로 데려와야 할 고려인 분들을 찾는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고려인들은 동포끼리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는 의식이 강해요. 예전 구소련 때부터 같이 옮겨다니고 고생한 기억이 남아서겠죠.”

다행히 이들 고려인마을 소식을 듣고 십시일반 후원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2022년 4월부터 2023년 3월까지 대한적십자사가 고려인 귀환 지원에 참여하면서 총 876명의 우크라이나 국적 고려인이 한국으로 와 가족들과 만나게 됐습니다.

남루이자 씨를 광주고려인마을에서 만났습니다. 7월 27일 동아일보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루이자 씨는 “한국이 우리에게 해준 일에 대해서 매우 감사한 마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크라이나를 떠나 한국에 완전히 정착하기로 마음먹었다고요.

마주하다
: 피란 후 정착은 또다른 과제

고려인들은 연해주에서의 독립운동을 물심양면으로 돕던 우리 동포들의 후손입니다. 1937년 소련의 강제 이주 정책에 따라 자신의 뜻과 무관하게 그 먼 곳까지 흘러가게 된 역사가 있죠. 지금 이분들과의 동행을 위한 과제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1. 어렵게 모셔온 고려인분들이 한국 생활에 적응해서 안착해야 하고요.

2. 돌아오지 못하고 현지에서 어렵게 사시는 고려인분들에 대한 지원도 여전히 필요합니다.

이 과제는 모두 현재진행형입니다.

해외 고려인 동포 현황

기타

  • 우크라이나

    1만2711

  • 투르크메니스탄

    659

  • 타지키스탄

    643

  • 벨라루스

    400

  • 아르메니아

    350

  • 몰도바

    60

  • 조지아

    7

  • 아제르바이잔

    6

이들이 한국 사회에 안착하기 위해선 행정 차원에서 동포로 인정받는 과정이 우선인데요. 피란민들은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현재 고려인 4세대까진 우리 재외동포 비자(F-4)를 발급받을 수 있지만, 피란민들은 가족관계증명서나 출생서류를 발급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죠. 우크라이나는 우리처럼 온라인으로 서류를 뗄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많은 고려인 동포 분들이 전쟁 통에 6개월짜리 임시비자(G-1)을 받아서 입국했는데, 동포임을 입증할 수 있는 가족관계증명서를 제출할 수 없을 경우 비자 연장이 안 된다는 통보를 받아 가까스로 고국에 온 이들이 불법체류자로 내몰리기도 했습니다.

논란 끝에 2023년 3월부터는 우리 정부가 임시 비자를 연장해주고 있지만,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죠. 올 4월 말엔 우크라이나 정부가 자국민에 대한 여권 갱신 업무를 중단했습니다. 전쟁이 길어지고 있으니 우크라이나로 돌아오라는 거죠. 우크라이나로 돌아와야만 여권 갱신을 해주겠다고 합니다.

생활고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초기 정착 과정에서 한국에 이미 친척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거주지 마련부터 쉽지 않습니다.

생활고와 여권 문제까지 겹치니 고국에 왔어도 스스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 내몰립니다. 국내 고려인 동포의 도움으로 우크라이나 미콜라이프를 떠나 가까스로 한국에 왔던 황블라디미르 씨(40)는 결국 최근 우크라이나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광주에 아내 황엘레나 씨(38)와 자식을 남겨두고 떠나며 사람들에게 ‘돌봐달라’고 당부했다고 합니다.

생활고 탓에 우크라이나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가족들에겐 겨울엔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엘레나 씨와 블라디미르 씨는 온라인으로 소식을 주고 받는데요. 엘레나 씨는 남편의 문자 답장이 조금이라도 늦어질 땐, 마음이 철렁한다고 합니다.

한국에 모셔온 분들만큼이나 해외 계신 고려인들도 지원의 손길을 필요로 합니다. 우크라이나엔 무국적 고려인이 많다는 점도 특히 문제가 됐습니다.

유럽의 곡창이라고 불릴 만큼 비옥한 우크라이나 지역은 일종의 계절 농사인 ‘고본질’ 농업이 발달한 곳이었는데요. 많은 고려인이 이 계절 농사를 짓기 위해 국경을 옮겨다니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소련이 붕괴됐고요. 농사를 짓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머물다가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해 무국적 신분이 됩니다. 그런 고려인들이 우크라이나에만 무려 4만~5만 명이 있다고 합니다. 전쟁 통에도 모셔오기 어려운 분들이죠.

다시 보다
:손을 내밀어야 하는 이유

한국어보다는 러시아어가 더 익숙한 고려인 3~5세들은 대개 사람들이 기피하는 고된 일을 합니다. 피란 과정에서 몸이 상하거나 다쳤다고 해도 당장 치료를 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신분이 불안정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 의료 지원도 봉사에 의존하는 상황입니다.

국내 거주중인 구소련계 국가 국적 동포수

기타

  • 우크라이나

    3421

  • 투르크메니스탄

    508

  • 타지키스탄

    475

일할 능력이 있는 피란 고려인들이 한국에서 일을 구한다고 해도 문제입니다. 러시아말밖에 못하는 자녀들은 방치되거든요. 초등학생이나 미취학 연령의 어린아이들이 학교나 유치원에 가더라도 잘 적응하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적응이라는
또다른 산.

7월 고려인마을을 방문했을 때, 아이들을 위한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이 운영중이었습니다. 비행편 지원을 받아 지난해 한국에 온 고려인 5세 박밀로프(7·가명)의 고려인 아버지와 우크라이나인 어머니도 한국어를 하지 못합니다. 아이들은 한국어를 배우기 보다는 러시아어가 익숙한 아이들끼리만 어울리게 되죠.

한국이 힘이 없던 시기에, 바로 그 힘이 없다는 이유로 인해 고난을 겪으신 분들의 후손들. 어렵사리 한국에 돌아왔지만 적응이라는 큰 산을 또 마주하고 있는 겁니다.

이런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고자 대한적십자사는 고려인 항공편 지원과 초기 정착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지난해까지 진행한 바 있습니다. 충분한 관심이 모인 뒤 다음 차수 지원도 이어간다는 방침인데요. 대한적십자사는 고려인 대상으로 한국행 티켓과 기초 생계비, 분유 및 생필품 등을 지원했습니다. 515가구, 1067명이 대상이었죠.

여전히 이러한 기초 지원도 중요하고요. 더 나아가 고려인 분들이 고국에 정착할 수 있게끔 관심도 필요해 보입니다.

기자가 만난 국내 거주 고려인들은 한국에서의 환대에 감사해하면서 고국에서 오래 함께 살아가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쳤습니다. 우크라이나 자포리자주에서 탈출한 김알렉산드르 씨와 우크라이나인 아내 김타냐 씨도 그랬는데요.

고려인 4세인 알렉산드르 씨는 끔찍한 전쟁 참상에서 벗어나 아내, 두 자녀와 함께 고국에 왔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도 고려인들은 한식 명절 때마다 조상들을 기리는 문화를 지켜올 만큼 정체성에 대한 자부심도 강하다고요.

그런 그가 말합니다. 한국 국적을 받아 여기 정착까지 하고 싶다고요. 그럼 아내 김타냐 씨 역시 현재 비자(방문동거 비자, 재외동포 배우자에게 부여되며 취업활동은 금지된다) 대신 함께 일할 수 있는 자격을 받게 될 겁니다. 부부는 자녀들을 안정적인 환경에서 키워나가고 싶다는군요. 그러기 위해 알렉산드르 씨는 고된 일자리를 마다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동포들이 다 흩어져 살잖아요. 내 고향과 집이 없다는 느낌을 받는데, 이곳은 제 고향 같습니다. 조상들이 계셨던 곳이라 그런 거겠죠.”

동행 프로젝트 첫 번째 이야기

고려인, 피란민으로 살아간다

고국에서도 자리를 잡지 못한 고려인 동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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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프로젝트는 동아일보-대한적십자사 광복절
    공동기획 캠페인의 일환으로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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