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말 임오군란을 틈타 조선에 입성한 청나라 원세개는 오만하기 짝이 없던 인물이었다. 서울 주재 청국 공사에 불과했지만 실제로 조선왕실 감시자 역할을 했던 그는 스스로 원대인이라고 칭하며 이 땅에서 하늘을 찌를 듯한 권세를 누렸다.
26세 새파란 나이의 원세개는 고종을 뵈러 입궐할 때도 유일하게 가마에서 내리지 않는 인물이었고 황제앞에서 기립하는 법도 없었다(윤덕한 지음 이완용평전). 오히려 허락하지 않은 일을 했다며 고종을 호통치기 일쑤였고 심지어 수라상을 발길로 걷어 차기도 했다니 지금 생각해도 그의 방자함에 분노가 치민다. 우리와 중국간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상징하는 사례다.
세계축구 4강에 올라 그야말로 국가 브랜드가 치솟았다는 이 축제 분위기에서 하필 아픈 과거를 거론하는 것은 월드컵에 취해 있던 때 중국이 우리한테 벌인 무례한 행동들 때문이다. 월드컵에 관계된 것부터 얘기하자면 유럽 몇몇 나라가 판정 시비로 우리를 공연히 주눅들게 했을 때 중국은 아시아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한국팀이 심판 덕에 승승장구한 것처럼 열심히 깎아 내린 나라다. 공동개최국인 일본의 여론이 아시아의 자존심을 살려 결승까지 가달라고 한국팀에 간바레(힘내라)를 외쳐줄 때 단 1승도 못 거두고 돌아간 중국은 국영언론들을 앞세워 우리의 승리를 질시하는 소아병적 모습을 보였다.
그래도 이 경우는 중국공안이 한국 외교관과 특파원들을 폭행하고 우리 공관에 떼거리로 들어가 탈북자들을 끌어낸 사건에 비하면 참을 만하다. 과연 중국이 똑같은 행동을 미국이나 영국에 대해서도 저지를 수 있느냐 하는 점에서 우리는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 자신에 모멸감마저 느낀다. 한중 양국 사이에서 국제법이 그렇게 무시될 수 있다면 우리 경찰도 필요할 경우 서울주재 중국 공관에 대해 같은 행동을 할 권한이 있단 말인가. 이 사건과 관련해 리빈() 한국주재 중국대사가 취한 일련의 행동 역시 주재 국민에게 청나라 시절 원세개를 연상케 하기에 충분할 만큼 오만했다는 평을 받는다.
중국 정부는 베이징 올림픽을 유치하면서 외국 언론의 무제한적 취재 자유를 보장한다고 약속했다. 그런 중국이 외교관 폭행 장면을 담은 화면의 위성 송출을 막은 것은 이런 나라에서 올림픽경기가 열릴 때 자신들에게 불리한 경기 장면의 중계방송을 제한할 가능성을 말해 준다. 특파원에 대한 폭행은 올림픽 취재기자들이 이 나라의 부끄러운 곳을 취재할 때 중국 공안들의 위협으로부터 어떻게 신변을 보호받을 수 있을지 의문을 갖게 하는데 외국 공관조차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 이번 사건으로 확인됐기 때문에 걱정은 더 커진다.
그래서 오늘날 중국의 이런 태도가 극적으로 변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중국은 올림픽 역사상 취재기자나 선수, 그리고 관람객들이 (신변 위협 때문에) 가장 스릴 넘치는 경기를 경험해야 하는 나라가 될지도 모른다. 이런 상태라면 모스크바와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이어 베이징 올림픽도 반쪽짜리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고조선 이후 우리가 중국으로부터 굴욕과 고통을 당하며 살아야 했던 기간은 일제 강점 36년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길었다. 가까이는 625전쟁 때 중국의 참전으로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는지를 잘 기억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미래를 위해 그들과의 쓴 과거를 뒷전에 묻었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의 관용을 지금 모욕으로 갚고 있다.
그런 중국보다 더 혐오스러운 것이 우리 외교통상부의 태도다. 주권이 침해되고 자국 외교관과 언론인들이 뭇매를 맞았는데도 외교부는 사과 한마디 얻어내지 못했다. 대만을 업신여기고 일본에 버르장머리 고치겠다고 나서던 그 기세는 다 어디 가고 상호 유감으로 끝내다니, 중국에 대해서는 국민 모르는 무슨 멱살 잡힐 약점이라도 있단 말인가.
유감이라는 말을 비롯한 외교적 언사는 종종 우리를 역겹게 한다. 유감이 어쨌다는 건가. 국민 정서와 관계없이 샴페인 잔 쟁그렁 부딪치며 우아한 미소와 겉치례 수식어로 유감따위나 합의할 때 외교관들의 입지는 유지될지 모르지만 국민은 철저히 기만당하는 느낌이다. 그런 일이나 하라고 국민이 혈세를 바쳐 호화 주택을 해외관사로 제공하고 화려한 파티 비용이나 대는 것은 아니다.
최성홍 장관을 비롯한 이 시대 외교관들, 특히 중국 관련 외교관들은 원세개에게 머리 조아리던 19세기말 조선왕국의 외아문(외교부) 관리들이 오늘날 역사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를 잘 공부해 두기 바란다. 국가의 명예를 높인 월드컵 태극전사들의 사명감과 기개를 외교관들이 반만이라도 닮았더라도 이런 모욕적 사건들이 계속될 수 있을지 의문을 갖게 한다.
이규민(논설위원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