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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상트페테르부르크

Posted May. 27, 2003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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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에서 벌어지는 외교행사 가운데 가장 힘이 넘치는 모임은 G8 정상회의다. 경제력을 기준으로 한 7대 강대국에 러시아가 가세한 모임이니 세계 최고 권력의 집합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1975년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을 회원국으로 출범한 이 모임은 이듬해 캐나다를 받아들인뒤 줄곧 G7(Group of 7)으로 불려왔다. 그러다가 91년부터 준회원 대우로 동참한 러시아가 97년 정식 멤버로 승격하면서 G8로 확대됐다. G8는 다음 달 1일부터 프랑스 에비앙에서 열리는 정상회의에 처음으로 중국의 후진타오 국가주석을 초청했다. 아직은 옵서버 자격이지만 중국이 가세한 G9이 세계 주요현안을 좌지우지할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G8 참여 자체가 강대국의 상징인 만큼 회원국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보리스 옐친을 비롯해 자존심 강한 러시아 정상들이 정치분야 회의에 참석했다가 경제분야 회의가 시작되면 퇴장해야 하는 수모를 당하면서도 준회원 지위를 감수한 것은 G8의 권위와 영예 때문이었다. G8 무대에 데뷔하는 중국의 심정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비록 사교 모임이니 말 잔치니 하며 강대국 정상들의 호화판 행사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지만 국력을 키워 G8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 국가가 어디 있겠는가.

이번 주 러시아에 주요 강대국 정상들이 집결한다. 러시아가 제2의 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 건설 300주년을 맞아 대규모 축제를 준비하고 50여개국 정상들을 초청한 것이다. 러시아는 4년 동안 15억달러를 들여 잔치를 준비했다 한다. 물론 G8 정상들도 총출동해 잔치의 주역으로 활약한다. 주말에는 호스트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미국 일본 중국 유럽연합(EU) 등 강대국 정상들의 회담이 계속된다. 러시아의 대문호 알렉산데르 푸슈킨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유럽을 향해 열린 러시아의 창이라고 했다지만 이제는 세계를 향해 열린 창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우리나라는 초청장을 받지 못했다. G8에 포함된 강대국도 아니고 EU 회원국도 아니지만 중국 일본을 포함해 국제적 잔치에 초대된 50여개국의 명단에 들어가지 못한 현실이 씁쓸하다. 러시아에 우리는 아직도 먼 나라인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고 수출입 규모 기준으로 세계 12위에 올랐으나 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국가의 대외 지위를 높이는 것도 정부의 책임인데 요즘 제대로 하는 걸 찾기 힘든 상황이니 나아질 기미도 안 보인다.

방 형 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