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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순국선열 넋

Posted February. 29, 2004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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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독립공원 내 독립관.

독립관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하다 산화한 순국선열 2327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곳.

그러나 기자의 눈에 들어온 모습은 위국 영령들을 모셔 놓은 현충시설이라고는 도저히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찢긴 문과 변색된 간판, 먼지가 수북이 쌓인 위패들.

한옥 건축물 내부에 들어서자 꿰맨 자국으로 누더기가 된 제단 천 조각이 눈에 띄었다.

중앙의 합동위패는 페인트칠이 여기저기 벗겨져 있어 글씨조차 제대로 알아보기 힘들었다. 위패들을 손으로 만져보니 지저분한 먼지덩이가 함께 쓸려나왔다.

주변 배수구에는 담배꽁초가 널려 있었고 처마 밑 한쪽 난간은 아예 통째로 떨어져나가 있었다.

관리를 맡고 있는 순국선열유족회 조세현 부회장은 날이 따뜻해지면 시민들이 돗자리를 깔고 술판을 벌이는 것은 예사고 문지방은 노숙자들의 잠자리로 변하는 등 시장바닥을 방불케 한다고 말했다.

독립관은 독립협회 사무실 등으로 사용되다 일제에 의해 강제로 철거당한 뒤 1996년 전국에서 유일한 순국선열 위패실로 새롭게 단장했다. 그러나 그 후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그나마 홍보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연간 방문객 수는 유족회원과 단체, 학생들을 포함해 20003000명에 불과하다.

국가 주도의 철저한 관리가 이뤄지고 있어 연간 800만명의 참배객이 다녀가는 일본 야스쿠니() 신사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이는 독립관이 개축되면서 관리를 맡게 된 유족회의 인력이 모자란 데다 책임기관인 서울시가 이 같은 사정을 알고도 전기요금 등 최소한의 관리비조차 지원하지 않고 있기 때문.

유족회는 지난 2, 3년간 서울시에 앞마당을 둘러싸는 펜스 설치와 안내요원 배치 등의 지원을 건의했지만 예산 부족을 이유로 번번이 묵살당했다.

서울시 공원녹지관리사업소 관계자는 작은 문화재 하나를 위해 공공시설에 펜스를 설치하는 것은 오히려 공원 미관을 저해하는 일이라며 공원에 쓰이는 예산을 지원해 달라는 요청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유재동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