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타니 고진(64사진) 일본 긴키()대 교수는 일본 현대 지성계의 스타다.
문학평론가에서 출발해 역사, 건축, 철학 등 전방위 문예평론가로 변신한 그는 인문학계의 무라카미 하루키()라 할 만큼 한국의 젊은 인문학자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비서구인의 주변부적 문제의식에 서양의 근현대사상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결부시켜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하는 그의 사유방식은 서구에서도 각광받고 있다. 24일 고려대 100주년 기념학술대회 문화분과에서 동아시아의 이상이라는 주제로 강연한 가라타니 교수를 만나 한중일 삼국을 덮치고 있는 민족주의 문제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가라타니 교수는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독일과 일본이 과거사에 대해 반성하는 자세에 큰 차이가 나는 이유를 주변국가와 공동체의 확대라는 이상을 유지했느냐 아니냐의 차이로 접근했다.
독일은 2차대전 패전 후 제3제국의 꿈을 유럽연합(EU)의 형태로 유지 발전시켰던 반면, 일본은 패전 후 대동아공영권을 깨끗이 포기하고 아시아와 단절을 추구했다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독일은 유럽 통합이란 이상을 위해 이웃국가들에 과거사를 끊임없이 사죄하고 있는 반면 아예 서구화를 택한 일본은 이웃국가들에 대한 죄책감에 무감각하다는 것이다.
그는 역사는 2번 반복된다는 헤겔의 말과 러시아의 경제학자 콘트라티예프가 경기파동이 5060년 단위로 또는 120년 단위로 반복된다고 분석한 것을 접목시켜 역사는 60년 또는 120년 단위로 반복된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는 1789년 프랑스혁명으로 나폴레옹이 등장한 것과 1848년 혁명으로 루이 보나파르트(나폴레옹 3세)가 등장한 것을 역사의 반복으로 봤다. 1848년 혁명은 다시 120년 후인 1968년 혁명으로 반복됐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일본이 과거로 회귀하고 있지만 그것은 군국주의가 발흥한 1930년대가 아니라 근대국가 수립 초창기인 1880년대로의 회귀라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의 1880년대는 후쿠자와 유키치(18351901)의 탈아론()과 오카쿠라 덴신(18621913)의 범()아시아론의 각축전이 벌어진 시기였으며 결국 탈아론이 승리하면서 서구 제국주의의 길을 걷게 됐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가라타니 교수는 제국주의 일본은 이후 오카쿠라의 이상에 담긴 내용은 탈각한 채 아시아는 하나라는 구호만 받아들여 대동아공영권을 제창하게 됐으며 이후 2차대전의 패배로 다시 철저히 탈아론에 충실한 국가가 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현재 일본의 그 같은 탈아시아적 지향은 당초의 탈아론과는 달리 2차대전의 패배로 얻게 된 각성, 즉 미국과 대립하지 말고 아시아 편에 서지 말라는 의식의 반영이라는 것이다.
나는 일본 정치인들이 아시아인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면 절대 하지 않을 멍청한 말들을 반복하는 것을 볼 때마다 화가 났다. 그것은 아시아 국가와 관계를 돈독히 하려는 일본의 수많은 노력을 무화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언행과 그에 대한 국민적 인기를 지켜보면서 이를 깨달았다. 일본은 60년 전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다가 무의식적으로 120년 전의 역사를 반복하고 있다.
그는 120년 전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아시아는 하나라는 오카쿠라의 이상에 담긴 문화주의를 되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 이상이 국가와 자본에 의해 발화되는 순간 그 이상의 내용은 텅 비고 추악해진다며 역사의 헛된 반복에서 벗어나 조금씩 전진하기 위해서 아시아인 개개인의 연대와 제휴를 통해 그 이상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