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과 공항 외에는 갈 곳이 없었습니다.
무역업을 하는 영국인 빌 웨슬리(54) 씨에게 한국은 업무를 마치면 할 일이 없는 지루한 나라였다.
웨슬리 씨는 덕수궁 등 서울 시내 주요 관광지는 대부분 오후 6시면 문을 닫았고, 백화점 물건 값은 턱없이 비쌌다고 불평했다.
관광차 들른 일본인 요시토 마사히로(37) 씨도 3박 4일 일정의 대부분을 서울 동대문시장에서 중국제 짝퉁(모조품) 명품을 사는 데 보냈다. 그는 궁궐 몇 곳을 둘러보고 나니 서울에서 더 갈 곳이 없었다며 짝퉁을 쉽게 살 수 있다는 것 외에 한국 관광의 장점을 잘 모르겠다고 했다.
한국에선 일만, 즐기는 건 외국 호주 태국서 펑펑
최근 한국은행은 올 상반기(16월)에 반기() 기준으로 9년 만에 처음 경상수지 적자를 낸 주요 원인으로 60개월 이어진 여행수지 적자를 꼽았다.
실제로 올해 15월 한국인이 해외에서 쓴 돈은 15% 늘었지만, 같은 기간 외국인이 한국에서 쓴 돈은 4.5% 줄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본보는 최근 비자카드에 2005년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별 외국인 방문객 카드 사용액 현황을 의뢰해 분석했다. 비자카드는 아태 지역 카드시장의 60% 이상을 점유한 세계 최대 카드회사.
외국인의 나라별 신용카드 사용처를 분석한 결과, 외국인들은 한국에서 호텔(3억601만 달러)과 면세점(1억9603만 달러)에서만 전체 카드 사용액의 45%를 썼다. 호텔에서 자고, 출국 직전 공항 면세점에서 쇼핑하는 데 카드 지출의 절반 가까이를 쓴 것.
한국에선 외국인들이 돈을 쓸 곳도 별로 없었다. 비자카드는 카드 사용처를 600여 개 항목으로 분류했는데, 한국은 상위 10개 항목 지출이 전체의 78% 이상을 차지했다.
이에 비해 싱가포르는 상위 10개 항목 지출 비중이 17.0%, 홍콩은 21.8%, 호주는 22.8%로 매우 낮았다.
조사 대상 아태 10개국 중 외국인의 카드 사용액이 가장 많은 나라는 호주로 44억8771만 달러였다. 이어 태국 27억5205만 달러 중국 27억797만 달러 홍콩 21억9788만 달러 일본 16억9287만 달러 순이었다.
한국은 11억2280만 달러로 호주의 4분의 1 수준에 그쳤다.
호주-자연, 싱가포르-IT 차별화로 지갑 연다
외국인의 지갑을 여는 데 성공한 나라들의 특징은 차별화였다.
호주는 독특한 자연환경을 관광 상품으로 만들어 성공을 거뒀다. 외국인들은 호주에서 여행사에 2억5158만 달러, 렌터카 비용으로 1억 달러 이상을 카드로 썼다.
싱가포르는 정보기술(IT) 관광을 적극적으로 유치했다. 컴퓨터 관련 제품 구입에 외국인이 쓴 카드 사용액은 1억1372만 달러에 이르렀다.
홍콩은 쇼핑의 천국이었다. 외국인들이 보석을 사면서 카드로 긁은 돈만 2억 달러가 넘었고, 백화점과 면세점, 의류 및 액세서리 매장에서 사용한 쇼핑 금액을 모두 합치면 10억 달러가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