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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비즈니스 활기

Posted April. 04, 2008 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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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후 러시아 모스크바 서남쪽의 모스필름 거리.

붉은 바탕에 087 번호판을 단 검은색 벤츠가 휙 지나갔다. 087은 북한 외교관 승용차의 고유번호. 이 거리에 있는 북한대사관이 최근 구입한 차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뒷좌석에는 윤기 흐르는 가죽 잠바를 입고 검은색 선글라스를 낀 세련된 모습의 동양 여성이 눈에 띄었다.

대사관 주변에 사는 러시아인들은 예전에 볼 수 없었던 미모의 여성들이 북한대사관을 자주 왕래한다며 대사관에 고위 간부와 돈이 많아진 모양이라고 말했다.

취재팀이 모스크바에서 접촉한 탈북자들은 2006년 하반기 이후 북한에서 러시아로 보내는 노동자 규모가 폭증하고 사업 다각화와 에너지 확보 시도도 늘면서 북한대사관이 부쩍 활기를 띠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 비즈니스, 연해주에서 모스크바로

북한 지도층의 비즈니스 확대 의지는 북한과 국경을 맞댄 연해주에서도 엿볼 수 있다.

올해 2월 세르게이 다리킨 연해주 지사는 연례 보고서에서 올해 주정부는 (2012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실무 인력을 받아들일 예정인데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실무 대표단을 보내기로 했다고 밝혔다.

관계자들은 회담 개최를 위해 필요한 건설인력 파견을 타진하는 것이 대표단의 역할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보고서가 언급한 외국 원수는 김 국방위원장이 유일하다.

연해주정부는 올해 APEC를 준비하면서 북한 노동자에게 발급하는 노동허가증을 지난해의 4배 정도인 1만2000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연해주에서 북한 노동자를 고용한 한 외국인은 북한 간부들이 노동인력 쿼터를 늘리기 위해 러시아 공무원들에게 무료 북한 관광을 주선하는 등 로비가 치열하다고 전했다.

지난해 연해주에 온 북한 노동자들은 이 지역의 일자리가 포화 상태를 이루자 건설경기가 좋은 러시아 지방 도시와 모스크바로 이동하고 있다. 탈북자들은 러시아 극동에서 모스크바 주변 도시로 몰려든 북한 노동자가 10005000명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곳곳에 북한 사업소 체인

최근에는 대동강 능라 백두 군표 등의 이름을 가진 북한 사업소가 러시아 전역으로 뻗어 가고 있다.

러시아에서 12년간 체류한 탈북자 최기봉(가명39) 씨는 러시아 49개 주() 가운데 30개주에 북조선 사업소가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며 사업소의 90% 정도가 노동인력 관리 사무소라고 설명했다.

2005년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의 북한 계좌 동결 사태의 영향으로 동면에 들어갔던 러시아-북한 합자 회사들도 최근 활동을 재개했다. 나홋카에 체류하고 있는 한 교민은 1990년 초반에 활동했던 동방해산물 극동해운 등의 합자 회사들이 다시 간판을 달았다고 말했다.

러시아에 진출한 북한 기업의 사업비는 여전히 북한 노동자들의 주머니에서 나온다고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탈북자 이영광(가명46) 씨는 러시아 각지에 퍼진 사업소가 노동자 한 명당 한 달에 400500달러씩 뜯어가며 그 돈이 간부들의 활동자금으로 쓰인다고 말했다.

그는 노동자들이 번 돈으로 간부들이 고급 식당을 찾고 간부 부인들도 쇼핑센터에서 비싼 옷을 사들이면서 노동자들의 불만이 쌓이고 있다고 귀띔했다.

사업 다각화와 거액 뇌물

지난달 30일 모스크바 시내 한 호텔. 북한 사업소의 한 간부가 한 식당의 러시아인 지배인으로부터 식당 설립과 경영 방법을 배우고 있었다.

러시아인은 사업소 간부와 헤어진 뒤 식당을 운영하면 비용이 얼마 들고, 얼마나 남는지 등을 꼬치꼬치 캐묻더라고 전했다.

북한의 사업 다각화 노력은 러시아 유통업체에서도 화제다. 식품 체인점에서 일하는 타치야나 씨는 북한 사람들이 어느 날 뱀술을 갖고 와 무턱대고 사 달라고 부탁하는 바람에 난감했다고 말했다.

최근 북한의 대()러시아 비즈니스에는 러시아인들에게 거액 뇌물을 전달하는 큰손도 등장했다. 지난달 12일에는 한 북한 화물선 선장이 블라디보스토크 남쪽 슬라비얀카 항구에서 원유 100t을 세관 몰래 선적하다가 현장에서 적발됐다. 선장은 러시아 원유 저장회사 대표에게 뇌물 4만5000달러를 주고 원유를 빼돌린 것으로 밝혀졌다.

블라디보스토크 시의 한 관리는 워낙 액수가 많아 이 사건이 큰 뉴스가 된 것일 뿐 최근 북한인들의 뇌물 공세는 러시아 공무원 사회에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북한이 대규모 사업에 뒷돈을 대는 사례가 좀처럼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