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지도부는 북한이 친중파로 분류되는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아무런 상의 없이 즉결 처형한 것을 중국에 대한 무시이자 도전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강력히 희망해온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중국 방문은 상당 기간 성사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중, 북에 분노와 배신감
중국의 한 고위 관리는 새파란(새파랗게 어린) 김정은이 중국과 아무런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친중파인 장성택을 숙청했다며 불쾌감을 표시했다고 최근 외교라인을 통해 중국 측과 접촉한 정부 고위당국자가 20일 전했다. 이 당국자에 따르면 중국 고위관리는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중국과의 교감을 유지하면서 큰 문제를 처리했다며 (이런 과정이 무시된 장성택 처형은) 중국에 대한 무시이자 도전이라고 단언했다고 한다. 또 (주중 북한대사인) 지재룡도 소환이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 경우 김정은은 중국을 방문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 지도부 인사들과 교류해온 당국자들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김정은을 통제가 되지 않고 제멋대로인 지도자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중국 측 인사들은 장성택의 처형을 지켜본 이후 김정은이 1인 독재체제 강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공포정치의 희생양을 만들다보면 예상치 못한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핵심당국자는 중국이 겉으로는 냉정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심으로는 김정은에게 분노와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중국은 특히 핵실험에 반대해온 장성택의 처형 이후 김정은의 4차 핵실험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중국 고위관리는 북한이 핵실험을 고수할 경우 중국은 대국 이미지에 먹칠을 하게 된다며 북한의 핵개발에 반대한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김정은에 대한 중국의 불신은 김정일 사망 이후 2년간 누적돼 왔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김정은은 2011년 12월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했을 때 중국으로부터 20만 t의 긴급 식량지원을 받고도 아무런 감사 표시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북한을 보고 중국 당국자들이 아연실색했다는 게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돈만 뜯는 불만 누적
중국의 사업가들이 북한에서 잇따라 투자 피해를 보고 있는 점도 지도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있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 A사는 5월 주중 북한대사관의 중개로 북한 무역회사와 철광석 거래를 체결하고 50만 위안(약 8660만 원)을 선불로 지급했으나 아직까지 약속한 물품을 받지 못하고 있다. 7월에는 중국의 무역업체인 B사가 화물대금 60만 달러(약 6억3200만 원)를 받지 못해 소송을 추진한다는 내용이 당국에 보고되기도 했다.
최근 나선지역을 다녀온 한 중국 기업인은 북한의 보위부나 보안부의 공안기관원들이 무역허가증과 초청장 발급 등을 빌미로 중국 상인들에게 뒷돈을 요구하고 있다며 벌금을 억지로 물리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돈을 뜯어내는 경우도 많아 이를 못 견디고 사업을 접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과 사업을 해온 또 다른 중국 측 인사는 요즘 물자 반출이나 자금 회수에 애를 먹고 있다며 장성택 계열의 사람들이 대거 숙청된 마당에 석탄 발송을 중단해야 할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베이징=고기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