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May. 20, 2017 07:15,
Updated May. 20, 2017 07:30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로 김이수 헌법재판관을 지명했다. 문 대통령은 또 사실상 검찰 내 2인자인 서울중앙지검장에 윤석열 대전고검 검사를 승진, 임명했다. 김 후보자는 현 8인의 재판관 가운데 가장 진보적 성향으로 알려져 있다. 윤 지검장은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 때 항명파동을 일으킨 인물이다. 문 대통령은 헌재와 검찰 수뇌부 인사를 단행하면서 정권의 입맛에 맞는 인사를 앉혔다. ‘코드 인사’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헌법재판소는 대한민국 헌법의 최후 보루다. 헌재는 국회가 제정한 법안의 위헌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물론 수도 이전처럼 국가 주요 정책을 판단하며 대통령의 탄핵까지도 결정한다는 점에서 국기(國基)를 지키는 기관이다. 이런 점에서 헌재 소장은 어느 한쪽에 치우진 성향보다는 자유롭고 열린 사고를 가진 중립적 성향의 인물이 바람직하다.
김 헌재 소장 지명자는 2014년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에서 유일하게 기각 의견을 냈다. 그는 “통진당 강령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지 않으며 일부 당원의 행동을 당의 책임으로 귀속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RO(경기동부)의 내란음모까지도 이석기 개인의 일탈로 본 것은 아무리 소수의견이라도 헌법의 보루여야 할 재판관의 판단을 의심케 한다. 김 지명자는 2015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든 법률 조항을 합헌 결정할 때도 홀로 위헌을 주장했다.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가 2014년 4월부터 30개월간 이뤄진 693건의 헌재 결정 분석에서도 김 지명자는 가장 진보좌파적 성향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헌재 소장은 위헌 여부를 가리는 결정을 할 때는 재판관 한 사람의 몫의 판단을 하지만, 헌재 운영을 주도한다는 점에서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더구나 내년 6월 개헌을 공언한 문 대통령이 가장 좌파적인 헌재소장을 지명했다는 점에서 개헌의 향방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윤 신임 서울지검장 인사는 검찰 내부에 충격파를 던졌다. 당장 이날 사표를 낸 이창재 법무차관과 김주현 대검 차장을 필두로 검사장급 이상 간부들이 줄줄이 옷을 벗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기수 파괴’라지만 정권 초기 인사 쇄신 차원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윤 서울지검장의 임명과 관련해 “현재 서울중앙지검의 최대 현안인 최순실 게이트 추가 수사 및 관련사건 공소유지를 원활하게 수행할 적임자를 승진, 인사했다”고 밝혔다. 전국 최대 검찰청인 서울중앙지검에 일종의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청와대의 검찰 인사 발표는 형식부터 잘못됐다. 검찰청법에 따르면 검사의 임명은 대통령이 하는 게 맞지만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 제청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이번엔 이런 절차가 모두 생략됐다. 인사 발표도 법무부가 아닌 청와대가 직접 했다.
헌재와 검찰은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이 생명이다. 이를 지키려면 인사부터 중립적이어야 하고 정치적 독립을 지켜나갈 인물을 요직에 앉혀야 한다. 어제 인사는 이들 기관에 향후의 칼바람을 예고했다는 점에서 ‘알아서 기라’는 신호를 보낸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헌재를 좌파성향으로 만들고, ‘박근혜 검찰’을 ‘문재인 검찰’로 만들려는 것이 대통령의 뜻이 아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