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미 중인 홍현익 국립외교원장(사진)이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종전선언이 결국 안 된 채로 가게 되면 내년 여름은 굉장히 위험한 여름이 될 것”이라며 종전선언을 촉구했다. 북한과 협상이 재개될 경우 내년 한미연합 군사훈련을 유예해야 한다는 주장도 내놨다.
홍 원장은 이날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우드로윌슨센터가 ‘북-미 관계 전망’을 주제로 개최한 세미나에서 “북한이 내년 2월 베이징 올림픽과 3월 한국 대선까지는 지켜보겠지만 이후에는 참지 않을 것”이라며 종전선언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북한이 도발에 나설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는 “미국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 있는 진정할 기회를 줘야 한다”며 “그 첫 번째 단계로 종전선언이라도 해주자는 게 문재인 대통령의 제안”이라고 했다.
홍 원장은 “북한 입장에서 미국은 믿을 수 없는 나라이며, 말은 거창한데 행동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미국에 책임을 묻는 듯한 발언도 내놨다.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와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 중단 등의 성의를 보였는데 미국이 아무런 상응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러시아의 개혁개방을 이끈) 고르바초프로 만들어야 하는데 우리가 스탈린으로 만들고 있는 건 아니냐”고도 했다.
한국 측 패널로 세미나에 함께 나선 고유환 통일연구원장도 “북한이 핵 포기와 경제 발전을 결심하고 선행 조치를 했는데 선순환이 이뤄지지 못했다”며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김기정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도 “한반도 평화를 위해 종전선언이 가능하다”고 거들었다.
한국의 주요 통일외교안보 국책연구기관 수장들이 한목소리로 종전선언을 촉구했지만, 워싱턴의 학계와 싱크탱크 인사들은 이에 대해 우려 혹은 비판 의견을 내놨다. 데이비드 맥스웰 민주주의수호재단(FDD) 선임연구원은 “종전선언은 한미 관점에서 위험한 부분들이 있어 파국으로 가기 쉽다”고 했고, 랜드연구소의 스콧 해럴드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이 종전선언을 너무 밀어붙이면 한미 관계에 큰 해를 입힐 수 있다”고 주장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유엔의 대북제재 결의가 금지하고 있는 행위임을 상기시키며 “북한이 발사를 안 했다고 칭찬해 주는 것은 ‘오늘 살인 안 했으니 잘했다’고 칭찬해 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세미나 후 홍 원장은 워싱턴 특파원단과의 개별 간담회에서 북한과의 협상 재개 시 내년 봄 대규모 한미연합 군사훈련을 유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