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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내년예산 선거바람타면 끝장

Posted March. 28, 2001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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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화요일 확정한 2002년 예산편성지침 은 내년도 나라살림 꾸리기가 얼마나 어려울 것인지를 예고하고 있다. 경기침체로 걷어들일 돈은 제한적인데 세출요인은 급증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는 신규사업을 최대한 억제하고 인건비와 기본사업비를 올 수준으로 동결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지만 얼마나 실현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미 각부처가 요구한 내년 예산이 올해보다 65% 가까이 늘어난 것만 보아도 예산안 편성은 험로를 예고하고 있다. 정부가 가혹하게 조정할 것으로 믿는다.

그럼에도 정부의 계획에 벌써부터 의구심이 드는 것은 우선 이 지침이 올 경제성장률을 5%로 전제하고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미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국내 대부분의 경제분석기관은 올 성장률이 당초 예상보다 낮은 4%대에 그칠 것으로 예고하고 있지 않은가. 덧붙여 내년도에는 의무교육 확대, 의보재정지원 등 신규 경직성지출이 줄줄이 예고되고 있다. 오히려 세출이 계획보다 더 축소되어야 할 판인데 정부의 실행대책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내년에 있을 정치행사들이다. 과거의 예를 볼 때 어느 한해 예외없이 선거가 있는 해에는 정치논리에 지배된 행정부가 선심성 팽창예산을 내놓았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예산편성 과정에서는 이번과 마찬가지로 긴축을 강조해 놓고 나중에 교묘하게 위장된 선거예산을 편성했던 일도 그동안 예외가 없었다. 대통령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과연 행정부가 그 굴레로부터 얼마나 자유스러울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이번 만큼은 그런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아야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과거와 다른 재정상태 때문이다. 1997년말 환란을 겪으면서 시작된 재정악화는 최소한 20년이내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상황이다. 정부가 2003년에는 균형재정을 이룩하겠다는 청사진을 강조하고 있지만 내년 예산이 또다시 선거형으로 둔갑한다면 그 목표는 물거품이 된다.

재정이 계속 불안한 상태라면 그 부담은 모두 국민의 몫이 된다. 내년에 부담해야 할 공적자금과 국채의 이자만 1조7500억원에 달한다는 사실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런 차원에서 예산당국의 결연한 긴축의지와 정치권의 자제가 요구된다. 이 정권이 얼마나 큰 빚덩이를 다음 정권에 물려줄지는 내년예산을 어떻게 편성하느냐에 달려있으며 국민은 그 과정을 면밀히 지켜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