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친구의 바람이 대단하다. 개봉 20여일 만에 관객 400만명을 돌파하는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70, 80년대 검은 교복 학창시절에 대한 추억, 현실의 답답증을 씻어주는 폭발적인 화면, 그리고 진정한 우정과 의리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할까. 그 시절은 사람에 따라 개인적으로는 아름다운 추억도 많겠지만 정치 사회적으로는 암울하고 쓰라린 기억을 남긴 세월이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그 시절에나 있음직한 일들이 마치 흑백사진을 다시 보듯 펼쳐진다. 대우차 노동자들에 대한 경찰의 무차별 폭력진압 비디오는 79년 YH사건, 80년 5월 광주의 필름을 다시 보는 느낌이다.
1970년대 산업화과정에서 소외된 빈민들의 삶을 그린 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조세희 작)이 그 시절의 베스트셀러였다면, IMF시대 서민들의 고달픈 삶을 그린 소설 머꼬네 집에 놀러 올래(이만교 작)는 오늘의 베스트셀러다. 일자리가 없어 방황하는 혈기왕성한 젊은이만도 100만명이 넘는 사회, IMF라는 고난의 터널을 거치면서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고 부자는 더 부자가 된 사회, 내 자식을 내 나라에서 공부시킬 수 없다며 외국으로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사회, 이런 사회에 희망 대신 실망만 키워주는 정치는 그 시절이나 오늘이나 형태는 다를지 몰라도 실상은 마찬가지 아닌가.
검은 선글라스를 쓴 기관원들이 바른 말하는 언론인을 끌어다가 고문하던 그 시절의 남산과 서빙고는 지금 없다. 대신 합법적인 계좌추적과 세무조사 신문고시로 기자들의 뒤를 캐고 언론사를 옥죄는, 거기에 맞춰 북 치고 나팔 부는 세력까지 동원한 언론개혁이 있을 뿐이다.
그동안 정권도 여러 번 바뀌어 국민의 정부에 이르렀지만 핵심인물은 그때 그 사람들이다. 쿠데타유신군사정권 시절 활약했던 사람들이 공동여권의 대표가 되어 무슨 연합을 한다며 손을 잡았다. 이들이 국정을 논의하고 나라를 이끌겠다고 나섰다. 개혁 대상이 될 사람들을 지도자로 내세워 개혁을 하겠다니 그 개혁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더욱 가관인 것은 연합의 지도자라는 그 시절의 정치인들 중에는 스스로 킹메이커라며 나서는 사람도 있다. 그들이 무슨 권한으로 킹메이커노릇을 한다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설령 그 역할을 한다고 치자. 그들의 손으로 만들어진 킹이 21세기 이 나라를 이끌어간다면 이 나라는 도대체 어디로 갈지 걱정이다.
50년 만에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룬 민주정권에서 정치가 제대로 풀리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이에 대한 대답의 한 실마리를 최근 오랜만에 입을 연 전직 국무총리의 말에서 찾아볼 수 있다.
김영삼(YS) 김대중(DJ) 두 대통령은 천신만고의 민주화 투쟁 끝에 대통령이 됐지만 정치권의 병폐는 여전하다. 결국 두 대통령의 민주주의가 정권획득을 위한 구호의 정도를 넘지 못했고 민주주의에 대한 깊은 이해와 경륜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평생을 민주화 투쟁에 몸바쳐왔다고 자부하는 두 분께서는, 특히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김대통령으로서는 선뜻 받아들일 수 없는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80년 봄, 그리고 87년 대선()때 양 김()씨가 집권 욕심 때문에 민주화 역량을 결집하지 못하고 분열상을 보여 그만큼 민주화를 지체시킨 책임은 면하기 어렵다. 또 YS의 3당 합당이나 이번 DJ의 3당연합으로 자신들이 반민주 반개혁세력이라고 비난하던 구정치인과 연대한 것은 한마디로 민주화의 큰 흐름을 거스르는 정략에 지나지 않는다.
민주화 투쟁 경력은 대단하지만 스스로의 정치행태는 매우 권위주의적이고 독선적인, 민주주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는 리더십의 소유자들이 두 김씨다. 그러니까 그들이 내세우는 개혁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 정당 민주화나 정치개혁이 말뿐인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김대통령이 이제라도 겸허한 자기반성 위에서 비판자들과의 진솔한 대화와 토론, 타협과 양보의 정신에 터 잡은 민주적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으면 오늘의 난국은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