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3월 한미정상회담 이후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의 대북 강경 정책을 맹렬히 비난해 왔고 남북대화마저 중단해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김 국방위원장이 미사일 발사유예를 지속하겠다고 밝힌 것은 미국에 대한 메시지 전달의 성격이 강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간접적인 의사 표현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국방위원장의 발언 배경을 이해하려면 북한의 미사일 발사유예 선언이 처음 나온 상황을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유예 선언은 98년 8월 대포동 미사일 시험발사 이후 북미간에 긴장이 고조된 뒤 4차례의 북미 미사일회담과 윌리엄 페리 당시 대북정책조정관의 방북, 대북 경제제재 완화조치 등을 통해 99년 9월 발표된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부시 행정부와의 불편한 관계도 과거처럼 대화와 상호 양보를 통해 풀 수 있다는 점을 강력히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 김 국방위원장이 '2003년'이라는 구체적 시점을 거론한 것은 이때부터 새로운 북-미관계의 틀을 설정할 필요가 있음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현재까지 북-미관계를 규율해온 것은 94년 제네바 합의였다. 2003년은 제네바 합의에 따라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북한에 경수로 2기를 공급하기로 합의한 시점이다. 물론 공기 지연으로 인해 2003년에 경수로 공급이 이뤄질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문서상으로 볼 때 제네바 합의는 이때까지는 북-미관계를 규정하는 국제협약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저변에는 북한이 당분간 시간을 벌면서 미국의 대북정책이 어떤 식으로 검토될지를 지켜보겠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보인다. 이는 김 국방위원장이 미사일발사 유예선언 효력의 시점을 얘기하면서 서울 답방에 대해 미국의 대북정책 검토를 함께 언급한 점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가 2차 정상회담 개최를 희망하지만 상황이 좋지 않다고 밝힌 것은 이같은 배경에서다. 미국의 향후 대북정책이 어떻게 형성되느냐가 2차 정상회담을 비롯한 남북관계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다만 김 국방위원장이 미사일발사 유예선언 유지를 다시 한번 강조한 것은 미국의 대북정책 검토과정에 좀더 긍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겠다는 측면으로 이해된다. 북한이 최대한의 성의를 보이는 만큼 미국도 상응한 조치를 취할 것을 기대한 것이다. 그런 뒤 서울 답방에도 나서겠다는 뜻이다. 이 밖에 북한이 미사일문제와 핵문제를 연계시키겠다는 입장이 아니냐는 관측도 없지 않다. 북한 핵문제 해결시점인 2003년에 맞춰 미사일문제를 거론함으로써 새로운 협상용 카드를 제시했다는 분석도 나온다.